추억은 노래를 따라 윤회한다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을 스튜디오 밖에서 들을 때면 나는 가장 아름다웠던 한 시절이 그리워 매번 ‘교복 병’을 앓곤 했었다. 노래에 마음을 내어주다 보면 ‘교복’을 입었던 저 먼~ 먼 시절, 찬란하고 빛났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회한이 가끔은 강물처럼 출렁이기도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신설이어서 교복이 상당히 특이하고 멋졌었다. 당시 여고생들이 입던 구태의연한 검정플레어 치마에 짧은 재킷이 아닌, 조끼와 넥타이에 셔츠와 롱재킷 그리고 맞주름이 잡혀 각이 세워진 미디 길이의 치마로 이뤄진 최첨단의 교복이었다. 그중에서도 색깔이 제일 대박이었는데, 옅고도 고급스러운 블루로 당시로선 상당히 드문 색이어서 멀리서도 우리 학교 학생인지 금방 구분이 갈 정도였다. 이 교복을 입고 걸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 ‘푸른 나비’를 떠올리며 ‘마담 버터플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생의 표현으로는 뭔가 좀 넘쳐난다 싶지만, 아마도 시를 쓰고 록 음악에 빠져 살았던 여드름쟁이 ‘남학생’이 생각해 낸 최고의 찬사 아니었을까. 그 아이의 찬사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어졌다. 매일 전해지던 장문의 편지로, 가끔 집 앞을 하염없이 서성이던 그림자로, 그리고 졸업식 무렵 참여했던 시화전에 배달된 꽃다발로, 그렇게 그 아이는 자신의 끓어오르는 마음을 표현하고 또 표현했었다. 내 마음속엔 이미 다른 이가 살고 있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고도 말이다.
교복을 벗고, 대학에 가고, 군대를 다녀올 때까지도 친구는 <오래전 그날>의 청년처럼 내 주변을 제법 오래 맴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노래가 그리는 대로 우리는 서로에게 생긴 사랑과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온전히 보듬을 만큼 잘~ 살아왔고 또한 성장했다. 어디 그뿐인가, 4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지 않고 안부를 챙겨 물을 만큼 농익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하여 그는 내 유일한 ‘남자사람친구’가 됐다. <오래전 그날>의 슬프나 결코 슬프지만은 않은 가사를 한 마디씩 따라 불러 본다. 작년 여름 이민을 간 미국에서 장성한 아들 둘을 데리고 귀국해, 잊지 않고 날 찾아와 준 친구의 낡은 미소가 기억나 웃는다. 우리의 ‘교복시대’를 사로 잡았던 ‘시와 음악’에 대해 얘기하다가 “넌 진짜 하나도 안 변했어.”라고 하는 장면에 이르면 잠시 먹먹해지기도 한다. 추억은 노래를 따라 윤회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추억이라면 더욱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다. 추억은 우리 뇌리 어디쯤 튼튼한 집을 짓고 절대 사라지지 않을 세월의 수레바퀴를 견디는 것이다. 가끔 희미해지려고 할 때면 노래의 결을 따라 그 수레바퀴를 굴리며 우리에게로 다가와 주기도 하고. 그래, 추억은 노래들 덕분에 영생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가사가 파동으로 전해진다. ‘너의 집 데려다주던 길을 걸으며 수줍게 나눴던 많은 꿈’ 아! <오래전 그날> 속에 박제된 스무 살의 푸릇한 우리와, 내가 지나온 시대의 무성영화를 닮은, 혹은 지지직거리며 균열을 일으키는 감성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2 comments
작가님의 감성에 감탄하며 오랫만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교복을 입었을 때를 회상하게 하는 좋음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