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로맨틱 코미디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 1. 일과 사랑이 제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상태. 충만함과 안락함이 인물의 집 곳곳에 놓여 있는 집기마다 꽉 차 있다. 2. 현재 상태가 몹시 불만족스럽다. 먹고 씻고 자는 자리마다 폐허 같아 집 밖을 나서면 나만 빼고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왜 나만 이래, 왜 나만! 하며 술주정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만족과 불만족, 이 두 상태는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현재 자신의 상태가 판이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끼고 있을 무렵, 일생의 동반자라 믿어 의심치 않던 파트너의 외도 현장을 발각한 후 자신이 믿어온 견고한 한 세계가 금세 철거될 모델하우스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든가, 음식물이 목에 걸려 캑캑거리다 말고 진심으로 고독사에 대한 공포를 체감하게 되는 날들 가운데, 어쩌다 우연한 경위로(때로는 사고 수준에 가깝게) 타인을 맞닥뜨리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연애 챕터로 진입하게 된다든지.

 두 가지 경우 모두 현재 상태를 배반하는 꼴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이는 플롯의 기본적인 성질을 품고 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즉 현재가 가져다주는 만족감과 안온함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이때 하게 되는 선택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우리는 인물의 지나온 연애와 다가오는 연애를 지켜보며 이입하게 된다. 1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정말 더러웠고 다신 상종하지 말자 식의 화법을 통쾌하게 감상하면서도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어 모종의 불안감을 획득하게 되고, 2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로코물의 플롯을 기대하며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해도 결말은 해피엔딩이겠지 싶은 느긋한 마음으로 만끽하게 된다. 물론 저건 영화여서 가능한 만남이고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푸념을 붙여가면서 볼 것이다. 새로 산 앙고라 니트에 뜨거운 라테를 쏟아붓고, 만 킬로미터도 타지 않은 차를 대차게 들이박은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말이 안 된다며 연신 도리질까지 해가면서.

 관계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이라는 것이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 영원이라는 단위까지 안 가더라도, 그것이 지속 가능하기에는 내가 가늠하고 통제하며 확신하기 어려운 변수 또한 상당하다. 환경과 상황에 맞물려 취향과 입장은 매번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상대에게 느끼는 만족 지수는 때마다 달라진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반응하는 그래프라고 두었을 때, 가장 중요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빠져 있다. 상대 역시 그러한 그래프 안에서 나를 곁에 두고 있다는 것. 두 사람의 상황과 입장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서로를 잃게 될 위험에 처한다. 종내에는 타이밍이 안 맞았다는 말로 갈음할 수밖에 없는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한 개인에게 사랑이라는 무형의 감정이 항구적일 순 있어도, 관계로부터 오는 만족감이라는 건 그저 한시적인 상태에 불과한 것 아닐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율리에 역시 악셀과 관계가 깊어지는 동안 권태로운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미 어느 정도 이상의 업적 성취를 이룬 악셀과는 나이 차도 나이 차지만 삶의 반경 역시 너무나 다른 단계에 놓여 있는 것만 같다. 아이를 갖고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 안정기를 보내고 있는 악셀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율리에는 동시대적 감수성이나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지 못한 채 홀로 외딴섬에 있는 기분만 들고, 어쩐지 자신은 내세울 것도 드러낼 것도 없는 것 같아 작아지기만 한다. 율리에는 만화를 그리며 업무에 몰두하던 악셀이 잠깐씩 환기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잠깐 딴 짓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멀찌감치 있는 자신을 바라볼 때, 테이블 위에 놓인 정물과도 같은 용도로 그의 집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율리에는 화분처럼 가만히 있지 않기로 한다. 테이블 위에 있던 노트북의 문서 창을 열고 자신의 경험이 담긴 에세이를 적기 시작한다. 더는 아무리 소릴 내어 불러도 헤드폰을 쓴 채 작업에만 집중하는 악셀의 부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집 밖을 나서기로 한다. 악셀이 장악하는 공간이 아닌 곳을 향해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마주하게 된 타인과 통성명도 하지 않고 의미 없는 말과 몸짓을 나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기에 더없이 강렬할 수밖에 없는 교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것이 또 다른 사랑의 가능성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 인식하기로 결심한다. 지금 현재 상태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악셀이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말했듯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단계에 속해 있고, 자신을 찾아갈 시간이 필요한 그녀는 완전히 자유로워야 하는 단계를 아직 거치고 있는 중이므로.

 시간이 지나 완벽한 타인의 이름을 묻고 그의 과거 연애사를 듣고 물리적인 공간을 함께 점유하며 생활의 리듬을 비슷하게 맞춰가는 동안, 율리에에게 상대는 더 이상 강렬하고 매혹적인 타인이 아니라, 권태를 쥐여주는 불만족스러운 파트너가 된다. 율리에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에이빈드에게 넌 50살까지 커피나 나르고 싶겠지만 나는 더 많은 걸 원한다며 때아닌 수동공격을 해버리고 만다. 자신이 서점에서 일을 하는 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임시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자신과 에이빈드를 애써 구분 짓는다. 분명 낙차는 있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가려는 방향에 조금 멀고 높게 있던 악셀과 자신이 더 비슷한 사람인 것만 같다. 악셀이 아이를 갖고 안정된 삶을 살길 바랄 때는 그토록 빠져나오고 싶었으면서. 율리에는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정말 나쁜 사람인 걸까?

 관계는 대체로 불만족스럽다. 관계가 깊어지고 길어질수록 더 그렇다. 나는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며 퇴화되었다가 회귀하므로. 내 곁에 누가 있다고 한들 상대에게 만족하는 날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기 마련이다. 율리에에게 악셀과 에이빈드는 고칠 수 없는 결점을 가진 부족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이 주는 사랑이 부족했던 걸까. 아닐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현재 삶에 만족하거나 만족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가 결말에 갈수록 초반과는 다른 감정에 도달한다. 그러나 율리에는 전자의 경우에도, 후자의 경우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관계의 그래프에서 가장 중요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인 상대의 반응과 결정에 율리에는 쉬이 휘둘리지 않는 쪽을 택한다. 율리에에게 지금 가장 중요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대상은 그녀 자신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어떤 시절에는 누군가와의 영원을 셈해보는 것보다, 나 자신과의 지독한 연애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필요하니까.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하고 가끔은 절벽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감정이 휘몰아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와의 연애가 가장 오래갈 가능성이 크며, 어쩌면 영원을 약속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관계일 테니까. 그 한 시절의 승부가 끝이 나는 시점이 찾아올 때, 그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상태로 타인을 곁에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만족감을 지향하면서. 물론 그 역시 모를 일이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
OTT 티빙(Tving)
원제 VERDENS VERSTE MENNESKE
감독 요아킴 트리에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앤더슨 다니엘슨 리, 할버트 노르드룸
시놉시스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