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mono], 2018
언젠가부터 한 해의 끝자락에 들어서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쓸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한지 살핀 후, 핸드폰을 손에 쥐고, 편히 앉거나 눕는다. 그리곤 그해 1월 1일의 첫 사진부터 12월의 마지막 사진까지 차례대로 보기 시작한다. 고작 1년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순간들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현시점에서 불필요해 보이는 캡처 이미지나 사진은 삭제하기도 한다. 2022년 12월의 어느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엄숙한 마음으로 이 의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2022년의 의식은 초반부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원인은 하나였다. 나의 친애하는 강아지, 뭉치. 2022년의 1월과 2월까지는 뭉치가 나와 함께 있었다.

뭉치는 아주 어릴 때 우리 집에 와 17년을 함께 살았다. 누군가는 ‘살 만큼 살았다’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가족은 30년을 넘게 살았다는 어느 강아지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접한 후로 줄곧 뭉치의 기대 수명을 서른 살 이상으로 공언했다. 틈만 나면 뭉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뭉치야, 사랑해. 네가 서른이 되는 어느 날 나란히 앉아 함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자. 우리 가족은 이미 뭉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던 그의 형 하늘이를 속절없이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랬기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꿈뻑거리는 뭉치의 큰 눈을 보며 마음은 언제나 다른 말을 했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소중한데 도대체 또 누구를, 어디로 어떻게 떠나보낸단 말인가. 적어도 30년은 함께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조금만 아파 보여도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일과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끼니와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뭉치가 가본 적 없는 곳들을 골라 함께 다녔다. 뭉치와 좀 더 오래 살 수만 있다면 더한 노력도 기꺼이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이별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22년 2월, 뭉치는 저쪽 나라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무지개다리를 건너 버렸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와 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이별 직후, 예전부터 즐겨 듣던 노래들의 가사가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나란히 나란히>가 특히 그랬다. 이 노래 때문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날들이 생겨났다.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자주 손을 잡을 걸 그랬어
가만히 가만히 생각해볼 걸 그랬어
정말로 네가 뭘 원하는지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좀 더 같이 걸어 다닐 걸, 좋아하는 음식 조금 더 줄 걸, 그저 무위의 시간을 함께 더 보낼 걸.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그걸 알았다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우리 가족은 마지막을 몰랐다. 몰랐기에 자꾸 유예하고만 싶었다. 아니, 최선을 다하면 언제까지나 유예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나면 후회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건 무지한 인간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이별은 유예되지 않았고, 후회는 여전히 남았다. ‘정말로 네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보다, 너를 잃고 싶지 않은 욕심이 더 컸다는 후회가.

나는 너를 등에다가 업고 걸어보기도 하고
자동차에다가 태워서 달려보기도 하고
헬리콥터를 빌려 같이 날아다니기도 하고
돛단배를 타고 끝없는 바다를 건너보기도 했었네

뭉치는 인간과 달랐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묵묵히 견뎌주었을 뿐만 아니라, 욕심 많은 우리에게 끝까지 순전한 사랑과 행복만을 안겨줬다. 그러니 슬프지 않은 게 이상한 거라고, 뭉치가 우리에게 긴 시간 주었던 기쁨의 양만큼 괴로운 게 맞는 거라고 주억거리며, 한 번 더 ‘나란히 나란히’를 들었다. 2022년 2월의 사진 속 괴로움을 조금씩 손으로 넘겨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