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마로나 Marona’s Fantastic Tale] OST, 2020
세 살 된 내 아들은 요즘 자기표현의 절정기에 이르렀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몹시 단순하고 명쾌하다. 먹겠다. 놀겠다. 안 하겠다. 안아달라. 그에 비해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얼마나 구구절절한지. 골고루 먹어야 하는 이유, 자야 하는 이유,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 허리 디스크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를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지만 당연히 아이가 납득할 리 없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자신의 욕구를 들어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아이는 늘 화가 나 있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 근거를 들어 정확한 어휘로 유창히 표현해내지 못하는 발달의 한계 탓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짜증을 내고 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게 내 새끼라지만 그 큰 걸 눈에 넣으면 그래도 눈물은 나지 않을까? 아이의 공격에(정말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어 유감이다) 주말 내내 시달리고 난 뒤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 햇살은 참으로 찬란하다. 먹이고 씻기고 챙기고 달래서 겨우 집을 나서면 아이는 저만치 뒤에서 몸을 비비 꼬며 느릿느릿 따라온다. ‘잘 다녀와!’, 인사한 후 떠밀 듯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낸 후에야 나는 겨우 숨을 돌린다. 밀린 단톡방도 열어본다. 친구들은 할로윈 파티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할로윈이라니! 파티라니! 그런 것과 나는 이제 백만 광년쯤 멀어진 기분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나는 커피를 사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 노래를 듣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나는 한 번 꽂히면 그 노래만 계속 듣는 타입이다. 그래서 삼 개월째 나는 같은 노래만 듣고 있다. 요즘 듣는 노래는 영화 <환상의 마로나> 엔딩곡인 ‘Happiness(Is A Small Thing)’다. <환상의 마로나>는 버려진 개 마로나가 세 명의 주인을 만나고 떠나는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과 함께하는 그 순간의 행복에 충실한 마로나와는 달리 인간의 사정이란 복잡하기만 하다. 주인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각박한 현실에 쫓기고, 새롭고 즐거운 것에 홀리다가 자신의 곁에 늘 머물렀던 작은 행복, 마로나와 자꾸만 멀어진다. 마로나는 주인의 행복을 위해 그들을 떠나면서도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주어진 새로운 행복에 충실할 뿐이다. ‘Happiness(Is A Small Thing)’는 이런 마로나의 행복에 대해 아주 잔잔하게, 그리고 정제된 언어로 이야기한다. 가사는 루마니아 시인 엘레나 블라다레아누가 쓴 것으로, 감독인 안카 다미안은 이 가사를 두고 ‘간단하면서도 감동적인 시를 선물’ 받았다고까지 표현했다.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우유 한 접시
한껏 축인 혀
낮잠
뼈다귀를 묻을 곳

노래를 들으며 공원에 있는 개들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특히 매일 같은 시간 보는 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는데 그 개는 정말이지 자신이 휘날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휘날리며 뛰어다닌다. 귀, 꼬리, 털, 심지어 볼살까지. 매일 처음인 것처럼 잔디밭을 뒹구는 개들을 보고 있으면 나를 답답하게 했던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바쁘게 지나쳤던 풍경들이 다르게 보인다. 바람이 아름다울 수도 있나? 나는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흔들릴 때마다 잎사귀 사이로 햇빛이 혀를 내밀듯 비쳐 나는 약 오르게 눈이 부셨다, 안 부셨다 한다.

나는 방으로 돌아온다. 돌아와 글을 쓴다. 3시 40분이 되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어린이집 앞으로 갈 것이다. 아이가 달려 나오면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우리는 놀이터에 갈 것이다. 그 다음은 늘 똑같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안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눈을 마주치고, 볼을 부비고. 그렇게 또 내일이 오고 주말이 지나고 또 월요일이 시작되겠지. 파티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삶이다. 하지만 괜찮다. 특별하지 않아도, 어쩌면 조금 지루해도, 행복이란 이토록 작고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에. 오늘은 내 작은 행복에게, 그 반질반질한 코에 가만히 입을 맞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