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쥐가 된 밤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신기하게도 한참 전에 지나온 과거의 어떤 시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도착해보니 21년 전 어느 여름밤, 서울 강동구의 G역 부근이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부터 6개월 정도 고시원 세 곳을 전전하며 살던 때로, 그중 마지막 살던 H고시원 앞을 같은 반 친구 Y와 함께 천천히 걷고 있었다.
Y와는 그리 친하지도 서먹하지도 않은, 종종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다. 집에서 나와 고시원에 살며 학교에 다니던 나와 달리 Y는 독서실처럼 하교 후나 주말에만 고시원을 이용했다. 그런 Y의 방에 가끔 찾아가 “공부 잘돼?” 하고 묻는 정도였는데, 그날 밤, 나는 모든 것을 더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 Y의 방문을 두드렸다. “우리 나가서 좀 걸을래?”
제안은 그뿐이 아니었다. 나는 ‘꼭’ 고시원에 실내용으로 비치된 ‘목욕탕 슬리퍼를 신고 걸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신고 걷기도 불편하고, 걸을 때마다 요란하게 소리가 나고, 왜 이 밤에 저걸 신고 나와서 돌아다닐까? 보는 사람마다 한 번쯤 이상하게 들여다볼 만한 슬리퍼. 그걸 신고 ‘잠깐 산책하는 거 말고 천천히, 갈 수 있는 데까지 오랫동안 걸어보자’고 했다.
깔깔깔. Y가 명랑하게 웃었다. 찰랑거리는 똑단발머리에 모범생 분위기의 단정한 외모. 늘 차분하고 깔끔하던 Y는 목소리가 새처럼 맑았다. 그래서인지 장래에 아나운서나 성우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 웃음소리는 똑똑히 떠오른다. 깔깔깔. 휘파람새나 꾀꼬리가 귓가에서 노래하는 듯한, 고양이 방울처럼 예쁘던 목소리. “그래.”
“Hey 긴 고요 속에 숨죽여 있는 법을 알고 있지 않니 그 방법을 나에게도 알려줘”
_<Mouse> 중에서
집으로 자꾸 쳐들어오려는 쥐들에게 겸손하게 생존 방식을 묻지는 못했던 나는 축축하고 어두운 반지하 셋방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다 결국 고시원으로 가출했다. 월세 11만 원짜리 창문 없는 고시원 방에서 오래 잠들까 형광등을 켜놓고 자다 얼굴에 금세 기미 꽃이 피어버렸던, 시장의 천 원짜리 백설기 떡, 학교 급식 우유, 고시원 앞 이삭 토스트를 매일의 양식으로 삼던 허기진 날들. 공용 냉장고에 넣어둔 음료수를 홀랑홀랑 마셔버리는 공사판 아저씨들에게 분노를 쏟고, 하얀 여름 교복 아래로 물린 자국이 ‘쥐벼룩 자국’이라는 것을 선생님께 듣고 눈물을 쏟던 날들.
슬리퍼를 신고 걷던 그 밤은 그런 날들 속에서도 분명 가장 어두운 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곁에 있던 맑은 목소리의 친구가 목욕탕 슬리퍼를 신고 함께 걸어준 덕분에 조용히, 슬리퍼 소리만 내며 도시의 밤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한 마리 쥐가 된 듯이.
“I’m in this city and I’m going through the night Oh I have to hold my breath
I will find love and find a way to survive here”
_<Mouse> 중에서
아나운서나 성우가 되었는지, 다른 무엇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올여름에는 내내 Y와 함께 이 노래를 듣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라디오 디제이처럼 이 노래를 소개해달라고 해봐야지.
“21년 전 어느 깜깜한 밤, 슬리퍼를 신고 같이 걷던 친구와 같이 듣고 싶은 노래라고 하시네요. 이고도의 <Mouse>, 들려드릴게요.”
1 comment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