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런 난동 좀 부려봅시다
돈 없고 죽을병씩이나 걸린 이들이 웃으면서 떠들고, 가게에 외상을 써가면서 맥주에 집착하는 모습은 제3자의 입장에서만 보고 싶은 끔찍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렌트>를 볼 때마다 종업원에게 상당한 연민을 느낀다. 떼로 몰려와서 돈이 없으니 “미역 버거, 오이 파스타, 생강 튀김, 당근 소세지, 생마늘만 넣은 스튜”를 내놓으라는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정말 넌덜머리가 날 일이다. 사실 저 종업원도 무리에 끼어서 머리를 흔들며 고약한 손님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비아냥대고 싶을 것이다. 이 곡에 대해 난잡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나 끼어들어서 불러도 말이 되는 노래니까. 지금 내 처지가 아무리 봐도 남들에게 동정심을 사기 딱 좋아 보이면, 먼저 선수 치는 게 낫다. 동정할 거면 집세를 받지 말든지, 안 해줄 거면 난동 시작이다! 어차피 잃을 게 없다! 만지고, 키스하고, 소리치고, 웃는다.
집은 월세, 작업실도 월세다. 돈을 못 낼 정도는 아니지만, 작업실을 구하고 나니 벌이의 1/3이 두 군데의 월세로 다 빠져나간다. 여기에 의료보험, 국민연금, 민간 보험, 적금 등 자동이체 항목 몇 개를 견디다 보면 자연히 <렌트>의 OST를 틀고 킬킬대며 노래를 따라부르게 된다. 그럴싸한 글을 쓰기 위해 만든 상황이 아니다. 진짜로 웃으면서 따라부른다. 날 비웃고, <렌트>의 주인공들을 비웃는다. 글 쓴다고, 예술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불안한 벌이를 말장난으로 끝내겠다는 나의 의지는 사실 해학으로 승화시킨 엉망진창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더 강해진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나의 인생을 흔든 음악 몇 곡을 추렸지만, 나의 실생활과 이 정도로 오랫동안 맞닿아있는 곡은 ‘La Vie Boheme’이 유일했다. 로맨스에 목매는 곡도, 세련된 사운드 소스로 꽉 찬 곡도, 가장 사랑하는 장르인 포크의 대부가 부른 곡도 이 곡만큼 무겁지 않았다. 이 곡보다 난잡한 곡이 없었지만, 이 곡보다 무거운 곡도 없었다. 갑자기 너무 진지해졌다고? 내가 사랑하는 노래의 가치를 알리는 데에 이 정도는 진심이어야 한번은 당신들이 들어볼 것 같아서 그렇다. 집세 내기 빠듯한 분들이 계신다면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