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T(Original Broadway Cast), [La Vie Boheme A & B], (1996)
뮤지컬 <렌트>의 넘버 ‘La Vie Boheme’은 여러 가지 의미로 난잡한 곡이다. 챈트로 이어지는 곡 특유의 발랄하고 명랑함, 괴팍하게까지 느껴지는 배우들의 아우성, 이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이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점잖은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다. 형제와 자매라고 하면서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질 않나, 남들이 보든 말든 아무 상관없이 키스를 하질 않나. 게다가 “이상적인 일상과 마야 안젤루”, “성적인 이성적인 비이성적인 엑스터시”, “목소리 낼 용기, 혁명을 논할 권리, 노래하리, 춤추리, 딸딸이는 어떠리”로 연결되는 괴상한 말장난들은 당황스럽고, 우스꽝스럽다. 한국어로 번역된 가사나 원어 가사나 그렇기는 매한가지라, 라임을 맞추기 위해 공을 들인 번역가의 노력을 느끼고 싶다면 유튜브를, 원어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음원 플랫폼을 찾으면 된다. 뭐, 너무 친절하다고? 내가 사랑하는 노래를 알리는 데에 이 정도 적극성은 보여야 진심이 느껴질 것 같아서 그렇다.

돈 없고 죽을병씩이나 걸린 이들이 웃으면서 떠들고, 가게에 외상을 써가면서 맥주에 집착하는 모습은 제3자의 입장에서만 보고 싶은 끔찍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렌트>를 볼 때마다 종업원에게 상당한 연민을 느낀다. 떼로 몰려와서 돈이 없으니 “미역 버거, 오이 파스타, 생강 튀김, 당근 소세지, 생마늘만 넣은 스튜”를 내놓으라는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정말 넌덜머리가 날 일이다. 사실 저 종업원도 무리에 끼어서 머리를 흔들며 고약한 손님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비아냥대고 싶을 것이다. 이 곡에 대해 난잡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나 끼어들어서 불러도 말이 되는 노래니까. 지금 내 처지가 아무리 봐도 남들에게 동정심을 사기 딱 좋아 보이면, 먼저 선수 치는 게 낫다. 동정할 거면 집세를 받지 말든지, 안 해줄 거면 난동 시작이다! 어차피 잃을 게 없다! 만지고, 키스하고, 소리치고, 웃는다.

집은 월세, 작업실도 월세다. 돈을 못 낼 정도는 아니지만, 작업실을 구하고 나니 벌이의 1/3이 두 군데의 월세로 다 빠져나간다. 여기에 의료보험, 국민연금, 민간 보험, 적금 등 자동이체 항목 몇 개를 견디다 보면 자연히 <렌트>의 OST를 틀고 킬킬대며 노래를 따라부르게 된다. 그럴싸한 글을 쓰기 위해 만든 상황이 아니다. 진짜로 웃으면서 따라부른다. 날 비웃고, <렌트>의 주인공들을 비웃는다. 글 쓴다고, 예술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불안한 벌이를 말장난으로 끝내겠다는 나의 의지는 사실 해학으로 승화시킨 엉망진창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더 강해진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나의 인생을 흔든 음악 몇 곡을 추렸지만, 나의 실생활과 이 정도로 오랫동안 맞닿아있는 곡은 ‘La Vie Boheme’이 유일했다. 로맨스에 목매는 곡도, 세련된 사운드 소스로 꽉 찬 곡도, 가장 사랑하는 장르인 포크의 대부가 부른 곡도 이 곡만큼 무겁지 않았다. 이 곡보다 난잡한 곡이 없었지만, 이 곡보다 무거운 곡도 없었다. 갑자기 너무 진지해졌다고? 내가 사랑하는 노래의 가치를 알리는 데에 이 정도는 진심이어야 한번은 당신들이 들어볼 것 같아서 그렇다. 집세 내기 빠듯한 분들이 계신다면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