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Earth

고작 몇 해 전까지 내게 노년의 삶이라는 건 제법 낭만적인 상상으로 그려지곤 했다. 노인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애당초 벌어지지 않을 사건을 꾸며보는 일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내가 죽음을 곁에 둔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마의 할아버지, 내게는 증조부였던 분의 장례식에 나는 가지 않았다. 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죽음을 감당하기 어려우리라 판단한 엄마는 나와 동생을 서울에 둔 채 고향으로 향했다. 상여를 들고 마을 어귀를 도는 장례 행렬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억수로 많이 쏟아졌다는 것과 오래된 고택 지붕 위를 까마귀들이 쉴 새 없이 빙빙 돌더라는 그날의 이야기를 시간이 지나 엄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차례로 조부모의 장례를 치렀다. 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입관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면서도, 나는 내가 말하고 만졌던 그들과 누워 있는 저들이 동일한 자들이란 걸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로 상복 차림을 한 채 멍하니 장지까지 따라갔다. 아빠의 부모가, 엄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그 때문에 나의 부모가 많이 아프고 힘들 거라는 게 슬퍼서 같이 울었다.

현실에 죽음이 언제나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내게 죽음은 문학적인 사유 기제로서 더 내밀하게 다가왔다. 노화도 마찬가지였다. 생물의 생몰이란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깊은 해저에 서식한다는 죽지 않는 해파리 이미지는 한동안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이었고, PC 배경 화면이었다. 죽은 세포를 스스로 제거하고 다시 회복시킨다는 해파리는 영어 이름도 ‘임모탈 젤리피쉬 Immortal Jellyfish’인데다가,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언젠가 모태신앙인 친구에게 나는 죽지 않는 해파리야말로 신적인 존재이지 않느냐며 눙치며 말한 적이 있다. 그 해파리는 적어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생명체이지 않느냐고. 오래 산다고 다 신이라 할 수 있냐며 친구는 일갈했으나, 나는 아직도 죽지 않는 해파리 사진을 보고 나면 요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레이스 앤 프랭키>(2015)

죽는다는 건 실재하는 일이고, 더는 관념 체계에서 작동할 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걸 나는 요즘 절실히 체감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불면을 겪던 어린 날의 감각은 꾸준하게 나를 괴롭히지만, 죽음이 한순간의 사고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하지 않을 것이며, 아주 느리고 지난하게 찾아올 것임을 나는 이제야 안다.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아프게 된 나의 부모를 간병하면서, 이전과 같지 않은 체력이 되어 미용이 목적이 아닌, 생존의 결심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내 몸을 마주하면서도.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인물들 역시 노화로 인해 기억을 까먹고 몸을 다치고, 그런 까닭에 절망하고 아파한다. 고지혈증으로 쓰러진 로버트가 남편과 자식들 몰래 고열량의 음식을 먹다 들킨다든지, 관절염으로 더 이상 젓가락질을 할 수 없게 된 프랭키와 고관절 수술을 받은 그레이스, 그리고 등이 아픈 프랭키 세 사람이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고 난 후 부축할 사람이 없어 그대로 몇 시간을 누워 있었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는 코믹하게 연출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신체 부위 그 어느 곳 하나도 아프지 않았던 날들은 존재했을 터. 그레이스는 ‘뷰티 비치 Beauty Bitch’라는 악명 높은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자신의 이름을 건 화장품 회사에 일생을 다 바쳤으며, 수십년 간 변호사업을 해오던 로버트와 솔 역시 지역 내 가장 명망 있는(!) 이혼 전문 사무소로 입지를 다져왔다. 프랭키는 어떤가. 히피 문화가 전미를 압도하던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그녀는 푸티지로나마 접했던 역사적인 시위 행렬이나 페스티벌이 열릴 때마다 참여했던 화려한 전적이 있다. 그런 그들이 단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에게 제재를 받거나 이전과는 다른 취급을 받는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마지막 시즌에서 프랭키는 영매로부터 자신의 죽음이 석 달 남짓 남았다는 비보를 듣는다. 병원에서도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녀는 확실한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양 슬퍼한다. 죽기로 예정되기 전날, 프랭키는 가족들을 불러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한다. 죽는 건 결코 두렵지 않다던 그녀는 사실은 남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공포스럽다고 토로한다. 했던 말을 반복하며 점점 기억을 잃는 증상을 겪는 로버트 역시 솔과 나누었던 사랑의 황홀한 감정과 경험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슴 아파한다.

노년만이 감각할 수밖에 없는 좌절.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좌절 앞에 선 그들은 그러나 그럼에도 내일을 얘기한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냥 잊어버릴 때가 있다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아직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고, 어쩌면 우리에겐 아직 우리 인생에 가장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미래를 낙관하는 말들을 나눈다. 그들에게 오늘은 뒤를 돌아보기 위해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멀리 놓인 어딘가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자리다. 우리가 매일을 그렇게 보내듯이, 노년인 그들에게도 희망은 오늘보다 내일에 더 가까운 단어이리라. 비록 우리는 하루하루 점점 늙어가지만.

나는 종종 엄마에게 윤여정 배우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일흔이 넘어 오스카를 수상한 영광스러운 이벤트도 용기가 되고 귀감이 됐지만, 그보다도 그녀 자신 역시 육십 대는 처음 맞는 거라고, 나이가 든다 해도 그 나이를 겪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던 것에 대해서 아주 자주 말했다. 엄마 자신이 늙고 있다는 걸 체감할 때마다, 혹은 아빠 자신이 늙는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때마다. 며칠 전, 나의 부모는 사진관에 다녀왔다. 만발한 유채꽃 사이에서 맑게 웃고 있는 외할머니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왔다. 이번에 담근 열무김치는 청양고추 맛이 강해 많이 매우니 조금만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던 참이었다. 어느새 부모를 감시하고 제재하는 볼썽사나운 딸이 되어버렸다. ‘난 아직 자신 있어! 너나 잘해!’ 하고 되받아치는 그들이 자신만만해하며 더 잘난 척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에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인생 최고의 날들이 꼭 찾아올 것이라 간절히 믿으며. 그 믿음을 무기 삼아 즐겁게 오늘을 살기를.

<그레이스 앤 프랭키>(2015)
OTT NETFLIX
원제 Grace and Frankie
주연 제인 폰다, 릴리 톰린
시놉시스
고상한 그레이스와 괴짜 프랭키는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남편들이 서로에게 사랑에 빠져 그들을 떠나자 유대를 쌓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