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onna, [Vogue], 1990
어려서부터 댄스 음악을 좋아했다. 자극적인 음향,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박력 있는 비트. 그 강렬함에 끌렸다. 가장 중요한 건 춤이었다. 꼭 온몸을 불사르는 퍼포먼스가 있어야만 했다. 왠지 율동처럼 보이는 안무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쿨, 유피, 자자 같은 팀보단 터보, 클론, 유승준 같은 이들에게 열광했다. 그때도 지금도 춤은 전혀 못 추지만, 아직도 댄스 음악을 좋아한다. 여전히 춤을 잘 추는 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렌다. 어린 시절 만들어진 취향이란 이토록 무섭다.

이러한 취향의 뿌리에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있다. 먼저 좋아한 건 마이클 잭슨이었다. 댄스 음악을 좋아한 사람치고 그를 안 좋아한 사람이 있을까? 록 마니아에게 비틀스가 있다면, 댄스 마니아에겐 마이클 잭슨이 있는 것이다. 그의 움직임과 무대를 보고 있으면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Billie Jean’의 문워크, ‘Smooth Criminal’의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린 댄스, ‘Dangerous’의 짜릿한 군무는 어른이 된 지금 봐도 경이로운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어린 내게 마이클 잭슨은 신과 같았다.

문제는 마돈나였다. 늘 마이클 잭슨과 함께 묶이는 걸 보면 분명 대단한 인물인 것 같긴 한데, 마이클 잭슨을 보다가 마돈나를 보면 왠지 심심하게 느껴졌다. 케이블 채널에서 처음 본 마돈나의 뮤직비디오가 그가 북극 마녀로 등장한 ‘Frozen’이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그게 잊을 수 없는 그의 걸작이자 팝 음악의 흐름을 일렉트로니카로 돌린 중요한 분기점이란 걸 알지만, 그때 내게는 그저 춤을 추지 않는 댄스 가수의 기묘한 뮤직비디오 한 편에 불과했다.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의 춤 스타일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나를 마돈나로 인도한 결정적인 노래는 ‘Vogue’였다. 사실 이 노래도 처음부터 끌리진 않았다. 강력한 비트, 파워풀한 춤을 좋아하던 내가 은은한 하우스 비트와 우아한 ‘보깅’의 멋을 바로 느꼈을 리 없다. 우선은 뮤직비디오에 반했다. 할리우드 고전 영화를 보는 듯 감각적인 흑백 화면과 난생처음 보는 춤사위에 마음을 뺏겼다. 세상엔 이렇게 멋있는 뮤직비디오도 있구나. 또, 저렇게 쿨하고 시크한 춤도 있구나. ‘Vogue’는 내가 가장 처음으로 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작품이었고, 보깅은 태어나 처음 접한 성소수자의 문화였다.

‘Vogue’는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 일단 고전 할리우드 시대 아이콘들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마를레네 디트리히,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그들의 출연작을 찾아보기도 전에 가사에 등장하는 순서 그대로 이름부터 줄줄 외게 했다. 노래의 소재가 된 보깅은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음악과 춤 앞에서는 인종도, 성별도 상관없다던 평등의 메시지도 빠질 수 없다. 하긴, 음악 듣고 춤추는데 인종이, 성별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Vogue’는 아름다운 자유와 평등의 노래다.

마돈나는 콘서트를 할 때마다 새로운 편곡과 퍼포먼스의 ‘Vogue’를 무대에 올린다. 아마 그에게도 이 노래는 각별한 모양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분한 1990년 MTV 시상식 무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레전드’ 무대가 탄생했다. 언젠가 마돈나의 공연에서 ‘Vogue’를 직접 보는 게 꿈이던 때도 있었다. 나는 2016년 도쿄에서 그 꿈을 이뤘다. 수만 명의 인파로 가득 찬 공연장에서 마돈나는 ‘Vogue’를 부르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빙글빙글 봉춤을 췄다. 온몸을 불사르는 파워풀한 춤은 아니었지만, 명백히 그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멀리서 그의 도발적인 퍼포먼스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마돈나와 ‘Vogue’를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