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 [Embrace], 2020
“무슨 일하세요?” 무척 쉬운 질문 같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을 서슴없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성격인데도 최대한 고민한 후에 명확한 답변을 내려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뒤따른다. 프리랜서라고 답하기엔 분명 직장인이고, 직장인이라 하기엔 실제와 적잖은 간극이 있기 때문일까? 누군가는 평론가로, 다른 이는 에디터나 기자로, 또 어떤 이는 작가로 불러주지만 얼추 다 맞기도 하고, 그 모두 언감생심이기도 하다. 결국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일을 해요.”라고 답하기로 한다.

“그러면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자연스럽게 두 번째 난관에 부딪힌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지난 취향의 흔적을 나열하기엔 생략해야 할 아쉬운 이야기들이 많아 “요즘 듣는 음악을 가장 좋아해요.”라고 대답한다. 물론 늘 새롭게 듣는 음악에도 확고한 취향의 기준은 있어 이어 말한다. “음, 그중에도 잘 알 수 없는 음악을 특히 좋아해요.”

별것 아닌 질문조차 명쾌한 답변을 위한 고민이 뒤따르듯 세상이나 음악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해 역시 주로 단순성을 지향한다. “이건 이런 장르야.” “저건 저런 스타일이야.” 종종 이것과 저것을 합쳐 ‘퓨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낳기도 하지만, 때때로 기존에 알던 두세 가지를 섞었는데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않아 딱 잘라 말하기 힘든 어색한 무언가가 존재하기도 한다. 훗날 새로운 정의를 얻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결정성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그 음악만이 열렬한 흥미를 돋운다.

김보림, 서수진, 황진아는 각기 판소리 소리꾼, 재즈 드러머, 거문고 연주자다. 우리 전통음악과 프리 재즈의 협연 시도는 거의 40년 전부터 있어 왔고, 판소리 소리꾼을 앞세워 그의 소리를 대중음악의 특정 장르와 결합한 형태는 2010년대 이후 근래까지 이르며 점차 주목받은 몇몇 예시가 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조합 자체가 신선함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세 사람이 각자의 악기와 소리를 통해 함께 ‘무엇’을 연주하고 ‘어떠한’ 메시지를 강조하는 지다. 2020년 여름 내놓은 EP와 여기 수록한 곡 <여름>을 1년 지나 온스테이지 무대에 공개한 이들의 목소리는 마침 오롯이 ‘차이의 공존’에 핵심을 둔다.

2015년 첫 리더작 이후 6년 사이 정규앨범을 무려 네 차례 내놓은 드러머 서수진은 ‘즉흥’과 ‘스윙’이라는 재즈 본연의 가치와 미학을 잘 이해하면서도, 재즈 너머의 새로운 도전과 협업을 멈추지 않는 연주자다. 앞서 김보림과 ‘재즈 유명 레이블 ECM에서의 아시아 최초 정규앨범 녹음’이라는 타이틀의 Near East Quartet에서 함께 활약하며 전통음악과의 교집합을 고민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 황진아는 싱글 ‘사이’와 정규앨범 ‘The Middle’을 발표하며 전통 외의 창작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마침 각 싱글과 음반의 타이틀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과 무엇의 ‘사이’. 곧 위상에 있어 중간 지점(the middle, between)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말로 누구와 누구의 관계(relationship)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 사람이 함께한 <여름>은 처음부터 전통음악 소리꾼의 목소리에서 노래 아닌 색다른 음성이 흘러나온다.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내는 전통음악 속 ‘구음’이라 하기에도 뭣할 만치 반복되는 소리가 묘한 분위기를 이끈다. 마찬가지로 반복 패턴을 기조를 삼은 거문고는 음성을 감싸 안는 원초적인 리듬으로, 일순 짧고 굵게 감정을 폭발하는 독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드럼 역시 단지 남은 두 사람과의 인터플레이 및 나름의 독주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방식 외에 재즈 드럼과 전통 타악 사이의 소리를 절묘하게 흉내 낸다. 중반부에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삶의 애환을 녹여낸다는 이야기의 민요 <싸름타령>의 가사가 이어지며 더위와 청량함이 교차하는 음성 및 소리의 정체를 밝혀낸 뒤 다시금 여름의 풍경을 그리며 노래를 마친다.

이 곡을 퓨전국악이라 할까, 프리 재즈라 할까, 아니면 적당히 크로스오버라고 둘러대야 할까?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누구 하나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노래는 그저 내가 지금 미처 만날 줄 몰랐던 여름의 한철을 새 풍경으로 전한다. 우리네 관계와 현실 역시 계산 가능성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우발들로 가득하며, 그것의 가능성은 무한할 뿐만 아니라, 의미조차 언제나 불확정적이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사랑하고, 이를 인생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는다. 내일 나의 ‘인생의 노래’는 또 다른 노래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