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나도 괜찮아 Atypical> (2017)

나는 새로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무언가를 새로이 체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본 적 없는 장소를 가는 것도, 무언가를 처음 하게 되는 것도,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웬만하면 내 삶이 일정한 질량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으면 한다. 이는 태생이 충동적인 내 성미를 내가 잘 알기에 웬만하면 새로운 자극이 나를 추동케하지 못하도록 애초에 싹을 자르려는 예방일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대리 체험을 좋아한다. 그 시작은 책이었고, 영화였으며, 이제는 오리지널 넷플릭스 시리즈가 되었다. 바깥을 나가지 않고도 세계와 닿아있다는 느낌을 여실히 받게 되는 아주 간편한 방법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변화를 맞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물론 이야기라는 것이 대체로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주인공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긴 하지만. 학교를 입학하고, 이사를 가고, 이혼을 하고, 애인을 만나는 것. 그런 것들은 지나보면 별 거 아닌 일들인데, 그 당시에는 내 일상을 헤집어 놓는 큼지막한 사건이다. 그런 사건에 처한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나 감정 표현을 보며 대리 체험을 하는 게 조금 우습기도 하다. 나도 이미 다 겪어본 일이라서. 하지만 실제의 나는 현재 아무 사건도 없고, 더없이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게 좋으므로, 나는 그러한 변화를 대처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좋다. 그것이 생활에 가까울수록 더.

샘의 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별나도 괜찮아>는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가 많은 작품이다. 일상에서의 작은 어긋남이 사건으로 등장하고, 그로 인해 인물들이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십대 소년 샘의 모놀로그로 시작되는 에피소드에는 샘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면면이 담겨 있다. 선별적으로 세계를 탐구해왔던 샘은 점점 범위를 넓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위치에 놓이고, 새로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살면서 응당 해나가야 하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능히 해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을 보면서 나 역시 그 과정이 지난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때마다 겪게 되는 부침이 마냥 내가 섬약하고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모험이라는 게 꼭 엄청나고 대단할 필요는 없다고.

살아가면서 하는 사소한 선택은 그 나름대로 일종의 모험이다. 매일 수족관 속 펭귄을 보러가던 샘이 남극 탐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조그마한 모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멀리, 그리고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해 움직이게 되기를 희망한다. 비록 나는 새로운 자극 없이 한동안 더 평온하게 지내고 싶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대할 것이다. 터무니없이 커다란 변화만 아니라면 사양 않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재차 말하지만 너무 커다란 변화만 아니라면.

<낡은 것들의 힘 Worn Stories>(2021)

나는 물성인 것들에게도 영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담겨있다고 믿는 편이다. 일례로 지인이 차고 다니던 염주가 원래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어디서 주웠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나는 어떻게 그걸 계속 차고 다닐 수 있어? 거기에 무슨 내력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고 기우를 내비친 적이 있다. 내 말을 듣던 지인은 별 생각을 다 한다고 뭐라 했지만 그 뒤로 염주를 차고 다니지 않았다. 빈티지 웨어나 리사이클링 프로덕트는 잘도 입으면서 왜 몸에 지니고 다니는 반지나 목걸이, 팔찌 같은 것에는 유독 예민하게 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염주를 돌리며 무엇을 빌었는지 알 길이 없는데 그건 좀 찜찜하니까.

유난이라 해도 별 수 없다.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그것에 담긴 시간과 장소를 추적하는 걸 좋아한다. 그게 그/그것을 구성하는 데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을 거라 여기니까. 축적된 정보를 통해 그/그것을 파악하려고 하니까. 특히나 누군가가 오래 품고 있던 물건을 볼 때, 그 물건이 주인과 함께 어느 특정한 시기를 지내왔다는 걸 생각하면 괜히 짠한 마음이 든다. 인간은 종종 인간이 아닌 어떤 것에 마음을 기댈 때가 있으므로.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낡은 것들의 힘>은 추억을 담보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에게 각별한 물건들은 고가의 브랜드이거나 소장 가치가 높은 것들이 아니다.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준 넥타이, 어디서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유독 예뻐한 털 코트,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장신구까지.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여겨지는 보통의 것들, 이를테면 클래식한 명품이나 와인이 아닌, 나만의 가치 기준으로 소중한 물건. 그러한 물건에게는 지극히 사사로운, 그리고 사사롭기에 더없이 고귀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시절을 기리는 방식으로 우리는 물건을 살 때가 있다. 여행지에 가서 기념품을 사기도 하고, 연인과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반지를 사기도 하고, 누군가를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을 고르기도 한다. 결국에는 무형의 상태를 견딜 수 없어 우리는 무언가를 사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 수도 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등 기어이 실체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고 무언가를 믿게 되기도 한다. 사람이 아닌 물건에게 기댈 때가 있다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고 떠날 수 있지만, 물건은 소중히 여기는 한 나를 먼저 저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게 또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별나도 괜찮아>(2017)
Atypical
OTT Netflix
크리에이터
로비아 라시드
주연 제니퍼 레이슨 리, 키어 길크리스트, 마이클 래퍼포트
시놉시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10대 소년 샘은 어느 날 여친을 사귀겠노라 마음먹는다. 샘의 홀로서기로 인해 샘 바라기였던 가족들은 느닷없이 자아 찾기에 내몰린다.
<낡은 것들의 힘>(2021)
Worn Stories

OTT Netflix
삶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한 옷은 무엇인가요? 평범한 사람들이 특이하면서도 인상 깊은 사연을 풀어놓는다. 재미와 감동, 무엇보다 진심을 전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