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르니까, 그러므로 사랑!
“모든 걸 같이 할 필요는 없잖아요.”
<스페셜>의 주인공 라이언은 제 나이 또래보다 조금 늦게, ‘처음’을 당면하게 된다. 첫 입사, 첫 독립, 첫 섹스, 그리고 첫 연애. 뇌성마비라는 남들과 다른 조건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엄마의 그늘이 닿지 않는 자리를 새로이 만들어가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태어나서 지금껏 쌓아온 경험에는 언제나 엄마가 함께 했다. 라이언의 홀로서기에는 자연히 엄마와의 이별이 전제한다.
이 쇼는 만남과 이별을 다루고 있다. 너와 내가 비슷하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깨닫고, 너와 나는 각자의 트랙이 있음을 말해주는 이야기. 라이언은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서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연애 상대를 물색한다. 그러나 타인을 곁으로 들이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믿을 만하지도 않다. 전폭적인 신뢰를 담보하는 관계라는 게 있기나 할까. 차라리 현실 세계에서 유니콘을 찾는 게 더 빠를지 모른다.
관계가 진지해질 것 같다 싶으면 나는 매우 고약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데 골몰한다. 상대와 내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갖은 카테고리를 나눠 세세하게 정리한다. 더 깊숙해지기 전에 치고 빠지려는 심보일까. 그 누구보다 쿨하지 못하고, 질척거리는데 한 소질 하는 내가? 당치도 않다. 그럼에도 구태여 차이를 찾아내고, 그것이 마치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위중한 결격사유라도 되는 양 구는 건 왜일까. 그 과정이 상대에게는 무척이나 못되고, 내게는 무척이나 못난 짓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때마다 그 짓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는 비단 나만이 겪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라이언에게도 지속 가능한 관계를 도모하고픈 상대(태너)가 등장한다. 태너에겐 이미 오랜 연인이 있었고, 라이언은 그걸 알면서도 그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태너와 안정된 관계를 갖게 되고 나서부터, 이전에는 감히 감지조차 하지 못했던 차이점들을 하나둘 발견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태너는 라이언에게 모든 걸 공유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라이언도 물론 슬펐겠지만, 그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태너의 마음 또한 가늠된다. 두 사람 다 시차를 두고 각자 외로웠을 터. 상대와의 결속을 간절히 원할수록, 서로가 철저한 타인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진실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보이다가도, 철갑으로 만들어진 방패처럼 결코 뚫리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진실을 보고야 만다. 각자가 가진 돌기들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서는, 상대의 진짜 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까.
“완전히 내 삶에 들어왔으면 해요.”
<필 굿>의 주인공 메이는 여자친구인 조지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려 한다. 이유는 간명하다. 그녀가 자신을 버릴까봐.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자의 전형적인 변명이다. 내가 왜 이렇게 단언하냐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대 시절부터 리햅을 들락날락하던 메이는 오랜 기간 약물중독자라는 이름표에 갇혀 지내왔다. 깊은 중독 생활을 보내온 여느 사람들처럼 메이 역시 자책과 자괴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늘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것만 같고,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극도의 불안감은 점점 타인과 나 사이의 두꺼운 벽을 쌓게 만든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패닉을 견디는 방법으로, 메이는 침대 밑을 향한다. 매트리스와 바닥 사이의 좁은 틈에 숨어 메이는 가쁘게 숨을 쉰다. 패닉은 결코 홀로 방문하지 않는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떤 날들. 그날들은 장면으로 복기된다기보다, 그 장면 내내 자욱했던 감정들만 남아 메이를 공격한다. 메이는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대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면면이 말할 수 없다. 그러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하므로.
나 또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해 꽤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과거의 어떤 날들이 지독하게도 나를 괴롭혔고, 사실 아직도 괴롭히고 있으며, 이 괴롭힘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걸, 나는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분절된 삶을 살았다. 관계를 끊어내고, 새롭게 다시 형성하고, 또 다시 끊어내는.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망치지 않았으면 했고, 오늘의 나를 내일의 네가 모르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매일의 나를 이어 붙여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메이의 부모는 조지에게 말한다. 메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개념을 사랑한다고. 어제가 싹둑 잘린 것처럼 행동하는 메이를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지켜봐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 조지에게는 위험 경보가 울릴 수밖에. 안정된 직장, 적정 거리가 있는 관계 안에서 머물고 있던 조지는 메이의 기복이 심한 사랑 고백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 저러다가도 언제든 여행 가방을 들고 떠나버릴 것만 같으니까.
관계의 결속과 영원을 바라는 메이의 염원은 이루어질까. 그 바램이 묵직해지기 위해서는 메이가 청산해야 할 것들이 있다. 과거의 자신과 조응하기. 그때 너는 왜 그랬었느냐고 탓하지 않기. 그리고 그 과거의 자신이, 오늘의 나라는 것을 잊지 않기. 타인을 내 곁에 들이는 것만큼 힘겨운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그 힘겨움이 사랑 같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관계의 지난하고 힘겨운 상태를 줄곧 유지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Special
OTT 넷플릭스, TV드라마
출연 라이언 오코넬, 제시카 헤트, 푸남 파텔
시놉시스
뇌성마비에 게이라니, 이 청춘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새장 안에서만 살 건가! 마침내 바깥세상을 기웃거리는 라이언. 저 문 너머, 그가 꿈꾸던 삶이 있을까?
Feel Good
OTT 넷플릭스, TV드라마
출연 메이 마틴, 샬럿 리치, 리사 쿠드로
시놉시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메이 마틴. 인생도 새롭고 즐겁게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여자 친구 조지와의 관계는 복잡하고, 중독 치료는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