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현씨밴드, [각자의 밤], 2019
별안간 고백을 하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 해야겠다.

첫 번째 고백
– 나는 장윤정처럼 사느라 외로움을 몰랐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서울의 구성원이 되려면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이나 사람 같은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 자격을 쟁취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단단한 인프라 구축만이 서울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 믿으며, 자산을 쌓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매일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며 썼고 하루도 쉬지 않았다. 사람과 일을 얻을수록 자산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친구는, 하루에 행사를 열 개씩 뛰는 장윤정도 너처럼 바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매일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니까 외로울 틈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끔은 당위성 없는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나의 자산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무마시키고는 했다. 내 자산을 확인하는 것이 외로움을 무마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미봉책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쌓아온 자산이 허물어져 가는 걸 느꼈다. 일주일 내내 약속으로 차 있던 나의 일정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간 만나오던 사람들이 각자의 일들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언제든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번 만나려면, 적어도 삼 주 전에는 일정을 비워야 할 정도였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가장 쉬웠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해소되지 못하는 외로움이 퇴적돼 갔고 나는 도저히 그걸 막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하루는 퇴근하고 반신욕을 했다. 삼십 분쯤 지나고 배수구를 막아 놓은 고무마개를 뺐다.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던 욕조 안의 물이 회오리치면서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냉기가 몰려왔다. 한바탕 기침을 했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수위가 낮아지는 욕조에 덩그러니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껏 자산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이, 욕조에 있던 물처럼 완전히 빠져나가 버린 거 같았기에.

두 번째 고백
– 그런 내게도 사랑은 찾아왔다

삶은 끝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이라고 했던가. 나는 외로움이 진해질수록 주변 연인들을 부러워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안정감, 서로를 향한 친밀함이 부러웠다. 누군가와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겪어보지도 않은 연애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리움을 참아 내는 과정이 외로움이라면, 나의 외로움을 구제해줄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덮쳐오는 이름 없는 외로움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외로움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었다.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과 타인이 마모시켜주는 외로움. 내 자산이 욕조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후자가 충족되어야 전자와 싸우는 힘을 얻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난 사람을 찾기로 했다.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데이팅 앱을 깔았다. 그곳에 나의 외로움을 마모시켜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셀피를 찍고 보정 어플로 터치 한 번에 3kg씩 날리면서 수정했다. 하지만 데이팅 앱은 내 외로움을 해갈시켜주지 못했다. 얼마 안 가 앱을 지웠다.
이윽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랑이 찾아왔다. 잠시 활동했던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된 J였다. J는 처음 봤을 때부터 호감이었다. J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고 남의 이야기를 굉장히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리액션으로 상대방의 텐션에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에 끌렸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J가 나의 어깨와 허리를 만졌을 때, 이상형을 묻는 말에 나처럼 키와 체격이 큰 사람이라고 답했을 때, 헤어지면서 나를 안아주었을 때, J의 체취가 내 연구개를 강타했을 때. 혼자 머릿속으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수십 편을 그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J는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색한 나의 축하 메시지에 J는 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 후로 몇 번의 연애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도 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마음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결국 또 외로움이 찾아온다는 걸 배울 뿐이었다.

세 번째 고백
– 나는 늘 이런 사랑만 해요

J와 연락을 하지 않은 지 1년은 더 흘렀을 때였다. J가 혼자 제주도에 간다며 연락해왔다. J는 가볼 만한 곳이 있다면 추천해달라고 물었다. 난 혹시 남자친구와 헤어졌을까 싶어 슬쩍 떠봤다.
“무언가를 털어내러 가는 거면, 나상현씨밴드의 ‘각자의 밤’을 들어봐.”
이틀 후 J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각자의 밤’이 흐르는 제주 밤바다 영상을 찍어 보냈다. 다음 주에 만나자는 나의 메시지에, J는 너무 좋다고 답했다. 일주일 후 우린 한강 근처에서 만났다. J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눈빛, 나와 잘 맞는 텐션과 분위기. 함부로 내 연구개를 들리게 하는 체취까지. 만나자마자 약속장소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우리는 내 겉옷을 우산 삼아 함께 카페까지 뛰어갔다. 소나기가 그치고 햇빛이 카페의 창문을 타고 넘어와 J의 얼굴을 비췄고 J의 눈동자는 갈색으로 빛났다. 아주 오래전에 포기한 줄 알았던 사랑이란 감정이 마구잡이로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아주 멋대로 J가 외로움을 마모시켜주길 바라버렸다.
저녁이 되고 우린 맥주를 마시러 갔다. J는 헤어진 전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전 애인이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던 기억들에 대해 털어놨다. 전 연인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J가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J에게 끊임없는 위안을 건넴으로써,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어필하고 싶었다.
J는 제주도에 가서도 너무 외로워서 데이팅 어플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데이팅 앱이 참 웃기다고, 사각형 틀 안에 멋진 사진들을 올려놓지만 결국 다 외로워 보일 뿐이라고, 그게 참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치, 내 외로움을 누군가가 해소시켜 줄 거라 믿는 게 참 웃기지, 나는 대답했다. J는 그렇기에 더는 안 할 것이라 덧붙였다. 그리고 J는 내게, 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정말 좋은 친구야, 라는 말을 했다.
우린 맥주집을 나와 함께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각자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했다. 내가 탈 지하철이 먼저 도착했고 J는 가볍게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지하철을 탔다. 문이 닫힐 때 건너편 J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J가 날 보고 있든 아니든 둘 다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 핸드폰 보는 척했다. 까만 액정에 내 모습만 흐릿하게 비쳤다. 이윽고 지하철은 J를 뒤로하며 출발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검푸른 티셔츠를 입은 J의 모습이 수채화 물감 번지듯 오른쪽 왼쪽으로 길게 늘어지며 흐려졌고 지하철은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 창문에 제 각각의 모습인 사람들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덜컹거리는 몸을 손잡이에 잠시 기댔다.
J는 잘 들어갔냐는 나의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J는 나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데이팅 앱을 깔았고, 그 속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J를 발견했다. 사각형 안에 박힌 J의 모습은 그의 말대로 외로워 보였다. 이번에도 마음의 밀도가 한쪽만 높았다. 그렇게 또 당위성 없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과 타인이 마모시켜주는 외로움의 교집합이 커져갔다. 그래서 따따블로 외로웠다.

네 번째 고백
– 그래 우린 모두 슬픈 거야

J에게 비언어적으로 차이고 나서 한동안은 멘붕이었다. 나는 왜 J에게 친구밖에 될 수 없는 걸까? 외모, 경제력, 성격 등 모든 부분에서 나를 탓했다. 내가 이들 중에 하나라도 더 괜찮았다면 J에게 ‘안읽씹’으로 차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J는 왜 내게 ‘좋은 친구’라는 라벨을 붙였을까? 혹시 우리가 만난 그날,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도 한 걸까? 나는 어떤 점 때문에 그저 ‘좋은 친구’에 머물렀을까?
방에서 이불을 뻥뻥 차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산책하러 나갔다. 하늘이 그날 J가 입고 왔던 옷처럼 검푸른 색이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비추니 달빛과 별빛이 오른쪽 왼쪽으로 길게 늘여졌다. 플랫폼에 있던 J와, 지하철 안에 있던 내 모습이 3인칭으로 그려졌다. J와 나눈 메시지 창을 열었다. 사흘 동안 내 메시지 앞에 붙어 있던 1이 사라져 있었다. J에게 추천했던 ‘각자의 밤’을 들었다.
“너도 나와 같은 생각들에 빠져 있을까. 각자의 밤이 찾아오면. 이 도시에 모인 우린 모두 외로운 걸까. 그래 우린 전부 슬픈 거야”
그 후로 J와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앞으로도 만날 구실이 없으니 누구 하나가 접선을 제안하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날 밤의 산책 이후로 J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결은 다를지 모르지만, J도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J와 나는, 각자만의 이름 모를 외로움을 마모시켜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거 같다. 서로가 바라보는 외로움, 그걸 해갈해왔던 궤적이 너무나도 달랐던 게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무엇이 부족하길래 친구로만 남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뜯어내고 끊임없이 해체하던 밤을 더 는 갖지 않기로 한다.
물론 아직도 J와 함께했던 밤들이 일렁인다. 지금도 당위성 없는 외로움이 나를 뒤흔든다. 여전히 외로움이 차오르는 수많은 밤들에 허덕인다. 그럴 때면 그냥 ‘각자의 밤’을 흥얼거린다.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은, 욕조 속의 물처럼 점점 사라질 것이다. 난 그걸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수위가 낮아져 차가워진 욕조 속에서 혼자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외롭다는 걸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 외로움을 해결하려 애쓴 뒤에 오는 것들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시간이 이토록 흘렀지만, 여태껏 내가 외로움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모르기에, 여전히 타인이 나의 외로움을 마모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밤들은 왜 나를 부를까. 각자의 밤이 찾아오면. 우린 서로를 떠올리다 결국 잠에 들거야. 그래 우린 전부 외롭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