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 걸>(2019)

그래봤자 학교일뿐, 그러므로 끔찍할 뿐

하이틴 장르의 영상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를 들자면 첫째, 십대의 연애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 생물학적 나이에 돌입했으며, 둘째, 누가 보아도 굿 루킹인 시스 젠더 헤테로 남성이 등장하는 점(일단 그 ‘누가 보아도’의 기준에 내 미적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슬로우 화면 처리나 뽀샤시한 조명 같은 걸로 등장인물을 포장해주는 게 심히 거북스러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모든 장면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적나라하다는 것이다.
학교는 청소년이 마주하는 최초의 세계이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작동할 수 있는 체계를 알려주는 장소다. 그 작고 작은 사회 안에서 십대들은 자신이 어떤 계급에 놓이게 될지, 또래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지 번민하고 또 번민한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경로로서 시험과 성적에 집착하고 몰두하게 되는 건 기본 전제이자 조건이라고 친다손 하더라도, 반복적인 일과를 매일 살아내는 동안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계급이 높아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십대의 세계는 투명하고, 그래서 적나라하다. 슈퍼 너드와 자의적 아웃사이더, 프롬 퀸과 학교를 대표하는 운동선수, 그리고 이하 나머지들. 우리 모두 어떤 한 시기에는 이 ‘나머지들’에 속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말하려고 하는 영화 속 주인공은 그 ‘나머지들’ 안으로 깊숙이 빠져들고자 하는 인물이다.
영화 <톨 걸>의 주인공 조디는 16세에 185cm가 넘는다. 조디의 콤플렉스는 누가 보아도 ‘큰’ 여자라는 점. 또래 아이들의 정수리를 보게 되는 게 싫어 바닥만 보고 걷는 조디에게는 자신보다 한참 왜소한 던클먼이라는 남자 사람 친구가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인 던클먼은 언제부턴가 조디를 짝사랑하지만, 조디는 그에게 전혀 관심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스웨덴 교환학생 하퍼에게 사랑에 빠진다. 하퍼는 학교의 모든 여자들에게 관심을 받을 만큼, 그러니까 누가 보아도 ‘굿 루킹’인 남학생. 조디가 그에게 반한 것도 똑같긴 하나, 가장 큰 이유는 자신보다 키가 큰 남자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나’일 뿐

내가 주목하고자 했던 부분은 조디라는 여자애가 여성으로 변모해가면서 겪는 ‘여성성 수행’의 문제였다. 그는 프롬 퀸 출신의 아담한 언니와 함께 산다. 파티에 입을 드레스를 일 년 내내 고르는 엄마와 언니, 키가 크다는 것만으로 자신을 규정하려는 아버지. 가장 지척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학교라는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적나라하게 지시하는 또래 친구들. 조디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불화할 것인가. 불화하면서 온전히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만들 수 있을까. 십대들은 무섭고 더없이 끔찍하다. 자신의 발화와 행동 하나 하나가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검열이 없는 시기를 건너는 중인 그들. 우리 모두 십대 시절의 상흔을 하나쯤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그중 어떤 것은 지나칠 정도로 나를 가두고, 때때로 나를 짓뭉개고 부서지게 만든다.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나 역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조디는 ‘영화’라는 매체 속 조형화된 인물이고, 우리가 매체를 통해 욕망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감히 뛰어넘을 수 없었던, 그 높고 커 보이는 무형의 장벽을 뜀틀 넘듯 가볍게 점프해줄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조디는 자신의 장벽을 뜀틀처럼 가볍게 넘었을까. ‘가볍게’는 아니더라도, 종내에는 뛰어넘었을 터. 조디와 같은 상황에 처한 지금의 십대들, 그리고 과거의 십대들(나를 포함하여)에게, 우리도 폴짝, 언젠가 넘길 날이 올 수 있기를.

<걸스 오브 막시>(2021)

여자가 별점의 대상이 된다고?

영화 <걸스 오브 막시>의 배경인 록포드 하이스쿨에는 이상한 전통이 하나 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학생들의 평가로 이루어진 랭킹 리스트가 전교생에게 전달된다는 것. 혐오스러운 표현이지만 영화에서 등장한 워딩이므로 몇 가지를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최고의 엉덩이’, ‘최고의 가슴’, 그리고… ‘따먹고 싶은 여자’. 2020년대를 살면서 이런 학교가 존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쑥덕거림이다. 2000년대 초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듣고 봐왔던 쑥덕거림과 진배없는 풍경이 고스란히 영화 초반부에 담겨 있다. 나는 보면서 생각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기나 거기나.
리스트를 받은 여학생들은 당황하고 불쾌해하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주인공인 비비언과 그의 절친인 클로디아는 학기 첫 날부터 “올해도 쟤가 ‘최고의 엉덩이’에 뽑히겠지?”라며 복도를 거닌다. 미소지니 범벅인 리스트를 만든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여학생들 역시 그 리스트 한 줄 한 줄에 갇혀 있다. 왜냐고? 앞서 말했듯 학교라는 사회는 뒤돌아보면 정말 조그맣기만 한데, 그 안에 있을 땐 우주보다 더 크고 광활하다고 느껴지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위치를 점해야만 하는, 부단한 애씀을 시작하게 되는 공간이므로.
젊은 시절을 여성해방운동으로 보내온 엄마 리사의 옛 흔적을 발견하면서부터 비비언은 그 리스트가 잘못됐음을, 아니 이미 잘못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 것이 더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새로 전학 온 여학생 루시를 관찰하면서 자신들이 녹아들었던 이 세계가 실은 무척 엇나간 각도에 처해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왜 아직도 부유한 백인 남성 서사인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하느냐고 따져 묻는 루시를 경유하며 비비언은 몰래 자신만의 행동을 실천하게 된다.

Who Run The World?

“바보처럼 미소 짓고, 몸을 가리고 가식 떨며 속이고, 침묵하지 않아.”
엄마 리사가 젊은 시절 자주 듣던 곡의 한 구절은 비비언을 추동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Moxie’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남학생들에게 그 단어가 부여될 때에는 ‘깡다구’, ‘가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비비언은 그 단어를 전유해 소식지를 만들고 여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침묵하지 않아.” 라는 가사는 비비언에게 그 리스트로부터 여학생들을 구해내고, ‘깡다구’라는 맨박스에 갇힌 남학생들을 겨냥해 뾰족한 목소리들을 담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자. 그때나 지금이나. 여기나 거기나. 엄마 리사의 시대에서 딸인 비비언의 현재 타임라인까지, 과연 달라진 게 있을까? 없다.
그렇다면 2021년도인 지금, 한국 사회의 십대들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을까. 30대 중반인 나는 중고등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아마도 2000년대 초의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쑥덕거림 같은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필터 없는 매체, 아직 컨트롤러가 없는 신종 범죄에 노출된 십대들을 나는 실제로 만나볼 수도 없을 것이다. 끔찍한 사건들이 자행되고 있고 범죄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현상을 목도하면서도 나는 그 실체를 알 수 없어 괴롭기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갖고 싶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여전히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 낼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그러나 조금씩 꾸준히 각도를 변경해내려고 한다는 것.
그렇다고 세상이 쉽게 바뀔까? 그건 모르겠다. 만약 바뀌었다면 20세기 중반에 퍼졌던 페미니즘 물결을 다시 복기하는 일도 없었을 터. 그렇다면 엄마 리사의 여성해방운동은 실패였을까? 나는 이것만큼은 감히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문득 비욘세의 ‘Run The World’라는 곡이 떠올랐다. 2011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비욘세는 백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여성 댄서들과 함께 역동적인 춤을 추며 묻는다. 그래서 세상을 움직이는 게 누구냐고. 영화와 더불어 이 영상을 함께 보시길 추천드린다. (https://youtu.be/A4r5XvENj8o)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 영상을 보면 바로 감지할 수 있다. 아니다. 그냥 말하련다. 세상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바꾼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 발화의 첨병에는 여성들이 자리해있다. 확신할 수 있다.

<톨 걸>(2019)
Tall Girl
OTT 넷플릭스, 극영화
감독 느징가 스튜어트
주연 에이바 미셸
시놉시스
언제부턴가 구부정한 자세와 움츠러든 마음으로 살아온 소녀. 16살에 185cm를 넘긴 조디는 보통의 소녀처럼 살고 싶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삼각관계? 무슨 전개가 이래!
<걸스 오브 막시>(2021)
Moxie
OTT Netflix, 극영화
감독
 에이미 포엘러
출연 조세핀 랭포드, 패트릭 슈왈제네거
시놉시스
예전부터 저항적인 엄마, 언제나 당당한 전학생. 그들을 보니 마음이 움직인다.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소심한 소녀의 반전 혁명. 교내 성차별 문제를 다룬 잡지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