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병에게
2011년 토니 어워즈(Tony Awards)에서 9개 부문을 휩쓸었던 <북 오브 몰몬 The Book Of Mormon>이라는 뮤지컬이 있다. 몰몬교 청년들이 우간다에 가서 선교하는 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이다. 책도 영화도 볼 수 없던 내게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고 <북 오브 몰몬> OST는 내 병의 BGM이었다. 오프닝 곡의 제목은 ‘Hello!’. 흰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금빛 명찰을 단 몰몬교도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전도를 한다. “안녕하세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대체 왜 이렇게 아픈 건지 생각을 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으니 그저 죽고만 싶던 내게,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이 옳고 나중에 죽으면 천국 갈 것이란 확신에 찬 청년들이 부르는 합창은 희망적이었다. 나는 ‘Hello!’가 어느 정도 나를 구원했다고 본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 그들의 투명한 믿음이 나에게 분명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나쁜 꿈에서 깨어 현실의 통증이 몰아닥치면 나는 리모컨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딩동’ 소리와 함께 몰몬 청년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몰몬을 믿으면 지옥에서 불타지 않습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때려먹던 어느 날 전 애인으로부터 나의 짐이 배달되었다. 나는 울면서 CD를 틀었다. “안녕하세요, 당신에게 영생의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나는 내가 영원히 낫지 않을 줄 알았다. 낫지 않을 거라 믿었다. 희망이 곧 고문이었기에 부정적인 미래를 받아들이는 편이 수월했다. 포기한 순간부터 천천히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영원히 낫지 않기는 개뿔,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걸어 나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 하던 공부도 마쳤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쁜 기억을 본능적으로 잊어갔다. 내 인생에서 아팠던 2년을 없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오래전 일들이 다시 떠오른 것은 이다울 작가의 <천장의 무늬>(웨일북, 2020) 덕분이다. 작가 역시 이름 모를 병을 안고 살고 있다.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나의 고통의 경험은, 1년 반 동안 만성 통증을 앓고 나서야 ‘섬유 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이다울 작가의 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다울 작가의 책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병든 몸을 견디며 필사적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Hello!’를 듣던 날들의 나처럼 침대에서 천장의 무늬를 세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글쓰기’라는 동아줄이 있을까. 병든 친구를 찾아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친구들이 있을까. 병원을 데려 가줄 가족이 있을까. 병원비는 있을까. 빚은 어떻게 갚고 있을까. 코로나 상황에서 작은 방이 세계의 전부가 되어가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 지금 그 터널 안에 있다면 고통의 이유를 자신의 지난 삶에서 찾으려 들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고통은 명분도 이유도 없다. 사실 대부분 불행이 그렇다.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면 어느 고통은 오래 걸려도 반드시 지나간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다만 그에게도 구원의 노래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