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외롭고 외롭던 숲 (중략) 내 젊은 날의 숲
하덕규의 노랫말은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내 인생의 노래는 단연 청춘과 내내 함께했던 ‘시인과 촌장’ 하덕규의 노래들이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 순연한 마음으로 듣던 그의 노래는 곧잘 나 자신과 대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성당 종소리로 시작해 절로 참회의 마음이 들게 하는 <가시나무>를 비롯해, ‘너무 많은 바람이 불었나봐 엉겅귀 꽃씨가 저리도 날리니 우린 너무 숨차게 살아왔어 친구 다시 꿈을 꿔야 할까 봐’로 시작하는 <푸른 돛>까지, 적막한 시간 그의 노래는 깊이 잠자고 있던 심연의 나를 들여다보게 하고 내 삶의 고단함을 가여워하며 어루만져주는 누군가의 손길같이 부드럽고 따스했다. 지친 사람들을 부드럽게 위로하며 그가 데려가는 곳은 늘 꿈이 있는 저 너머의 세계다. 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 우리가 서로를 따스한 미소로 바라보며 항상 함께 웃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가고 싶지만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세상살이에 지쳐 꿈을 향해 떠나기를 주저할 때 시인과 촌장의 살랑거리는 기타 소리에 실린 가사와 음률들은 생각만 해도 설레는 천국 같은 곳으로 어느새 우리를 데리다주는 힘이 있다.
숲에 있으면서도 숲이 잘 보이지 않았던 청춘의 시간들이 있었다. 청춘은 어찌 보면 색맹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흐드러진 아름다운 꽃이 눈앞에 있어도 노래하는 새들의 지저귐도 지줄대는 시냇물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외로운 그 숲에 누군가 날 찾아오는 이 있었으면 하고 항상 고개를 빼고 먼 곳만 본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으면 외롭고 외로워서 눈물 고였던 시간들,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었던 슬픔 고인 어둡던 숲의 기억들… 그렇게 청춘은 외로움에 사무쳐 길을 찾느라 방황하고 그 숲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어디로도 가지 못한 하루가 지나가고 밤이 오면 늘 그 시간 그 자리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과 DJ들의 이야기가 내 하루를 위로해 주곤 했다. 그 시간과 함께 혼자 들었던 노래들과 책들이 지금의 나를 키웠다.
세월이 흘러 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인다. 안온하고 정답고 생기로운 숲이 바로 눈앞에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숲을 벗어난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스럽고 평온함을 찾기 힘들다.
그제서야 그 숲을 그리워한다. 그 숲에 나 있는 여러 갈래 길, 아름다운 꽃들과 새들, 푸른 잎사귀의 나무들, 색색의 열매들. 그렇게 풍요로운 곳에서 늘 무엇을 찾은 걸까. 눈앞에 파랑새를 놔두고 행복을 찾아 떠난 누군가처럼 늘 헤매고 가슴 아프게 고독하고서야 그곳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며 행복한 곳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젠 눈앞의 꽃과 나무와 눈 맞추고 새들과 시냇물 소리에 귀를 열 수 있다. 바람의 색깔과 공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열매와 들풀의 촉감을 알 수 있다면 하루가 공허할 리 없고 외로울 리가 없다. 내 젊은 날의 숲에서 그걸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았다면, 분명 기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나의 길을 찾아 나설 힘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길을 몰랐을 때 숲을 더 잘 들여다볼 줄 알았다면 나는 조금 더 빨리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다시 평온함을 찾으러 숲으로 들어간다. 여러 갈래의 길이 결국 하나로 통해있음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