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2019)

* 영화 <런>(2020)과 <나이브스 아웃>(2019)의 경미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미합니다만, 그래도 영화를 보신 뒤에 글을 감상하실 것을 권합니다.

세상엔 사전에 예습을 하고 봤을 때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도 있고, 아무 것도 모르고 봤을 때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도 있다. <런>(2020)은 누가 뭐라고 해도 후자다. 만약 당신이 아직 <런>을 안 봤다면, 그리고 이은선 기자의 글보다 내 글을 먼저 클릭했다면, 당장 내 글을 읽는 걸 멈추고 극장에서 <런>을 보고 오시길 권한다. 앞선 안내문에 이어 두 번째 권고다. 나는 이 글에서 결말과 관련된 스포일러는 하나도 제공하지 않을 셈이지만, 그래도 <런>은 이 글조차 안 보고 갔을 때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까.

서스펜스 스릴러물로서 <런>이 가지는 한계는 명확하다. 영화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플롯구멍이 많고, 회수하지 않은 채로 남겨진 떡밥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한계는 정작 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전작 <서치>(2017)에서도 놀라운 서스펜스 직조 능력을 뽐낸 아니시 차간티 감독은, <런>에서도 마치 침대 시트의 구겨진 부분을 매트리스 아래로 밀어 넣어 감추듯 플롯구멍을 솜씨 좋게 감추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건 상당 부분 주인공 클로이(키이라 앨런)가 처한 상황 덕분이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의 말처럼 클로이는 그 누구보다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달고 살았던 부정맥, 천식, 당뇨, 혈색소침착증과 하반신 마비 탓에 클로이의 활동 반경은 극도로 제한적이지만, 엄마의 홈 스쿨링과 규칙적인 혈당 체크, 운동과 약물 복용의 루틴으로 훌륭하게 극복해 왔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제출하고 합격 여부만 기다리고 있는 클로이에게, 장애는 그리 큰 제약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엄마 다이앤의 헌신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기 전까지는.

유일한 동거인이자 보호자인 다이앤의 의도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클로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엄청난 장벽이 되었다. 휠체어 사용자인 클로이는 전동 리프트가 고장나면 당장 제 방이 있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된다. 비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클로이에겐 철창이 되는 것이다. 정보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집안과 바깥 세상을 이어주는 인터넷이 끊기기라도 하면 클로이는 순식간에 정보 음영지대에 고립된다. 엄마 다이앤은 직장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검색할 수 있지만,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클로이는 정보 음영지대를 탈출하기 위해 정교한 작전을 세워야 한다. 그런 클로이의 편에 서서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사소한 플롯구멍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나이브스 아웃>(2019)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나는 <나이브스 아웃>(2019)에서도 본 적이 있다. 여든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 유명 추리소설 작가 할런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채 발견되자, 할런의 자식들과 손주들은 적당히 슬픔을 연기하며 유산 분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누가 봐도 스스로 목을 그어 자살한 것으로 보이니, 별 다른 의심 없이 다음 수순을 밟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의뢰인으로부터 이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대니얼 크레이그)은 자꾸만 자살이 아닐지 모른다고 주장하고, 집안 식구들은 모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다.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아나 데 아르마스)만 빼고.

할런의 죽음과 관련해, 마르타는 할런의 가족들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루 종일 할런 곁에서 약을 챙겨주고 말동무를 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으니 보고 들은 게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마르타는 트롬비 가문의 일원이 아니고, 그들처럼 부와 명예로 자신과 제 가족을 보호할 만한 상황이 못 된다. 자칫 잘못해 경찰과 더 깊게 얽혀서, 미국에 불법 체류 중인 자신의 엄마(말렌느 포르트)의 존재가 경찰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엄마가 국외로 추방당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거짓을 말할 수도 없다. 마르타는 거짓말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구토를 하는 특이한 체질의 소유자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면 분명 의심을 살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순간 구토를 해서 모든 게 들통날 것이고, 진실을 말하면 자신과 제 가족의 안녕을 장담할 수 없다. 사건의 진실을 캐물어 오는 블랑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마르타는 거짓은 아니면서도 완전한 진실 또한 아닌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곡예를 해야 한다.

<나이브스 아웃>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플롯구멍이 없진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를 볼 때 그 구멍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우리가 마르타의 자리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언제든 제 가족이 추방당할 지도 모른다는 라틴계 노동자 마르타의 공포는 백인-앵글로색슨 부유층인 트롬비 가문 사람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제약이다. 트롬비 가문 사람들은 마르타를 제 가족처럼 아낀다고 말하지만, 마르타가 뻔히 옆에 있는데 ‘불법 체류자들을 모조리 추방해야 한다’ 같은 말을 신나게 지껄여 대는 팔자 좋은 그들이 마르타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 공포를 마르타와 함께 견디다 보면, 플롯구멍 같은 건 발견할 겨를이 없다.

<런>을 보고, <나이브스 아웃>을 떠올린 다음 나는 자연스레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을 돌아보았다.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집만 해도 현관에 경사로가 없고,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창은 툭하면 인종차별적인 언사로 뒤덮인다. 한국 국적의 비장애인 시민들은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 코로나19라는 공포를 제외하면 – 별 다른 위협이라 느끼지 않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그 일상조차도 누군가에겐 생과 사가 걸린 엄청난 공포인지 모른다. 더 많은 클로이와 마르타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 않을까?

<나이브스 아웃>(2019)
감독
 라이언 존슨
주연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아나 디 아르마스
시놉시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가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과 함께 탐정 브누아 블랑이 파견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