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트랙션>(2019)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공간이 있다. 놀이공원은 그중 하나다.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수많은 놀이기구, 사람들의 웃음과 비명과 음악이 뒤섞인 소리들, 커다란 탈것에 실려 춤추고 노래하는 캐릭터들의 퍼레이드 행렬…사람들의 즐거움을 지향하는 장소라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공간 안에서, 분주함에 뒤섞이고 휩쓸리며 지내는 시간은 일상의 번잡함을 잠깐 잊게 만든다. 눈앞에는 오직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만 즐비하다.

그렇기에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오히려 그곳을 빠져나올 때 맞이하게 된다. 소란함이 잦아들고 눈앞의 풍경이 서서히 다시 현실로 바뀌는 때에 말이다.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운행을 멈추는 놀이기구들을 바라볼 때의 서글픔 같은 것. 꿈과 현실이 서서히 교차되는 그 순간의 묘한 감흥을 나는 사실 가장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스웨덴에서 날아온 영화 <어트랙션>에서 독특한 매력을 느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환상과 날카로운 현실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사람들은 세계2차대전이라는 시대적 위기 속에서도 놀이공원을 찾는다. 스톡홀름의 두 놀이공원 ‘그뢰나 룬드’와 ‘페어 그라운드’는 그렇기에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누군가의 행복한 일탈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자 무겁게 이고가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환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두 가문의 고민과 견제와 방해공작은 물밑과 수면 위를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이 냉정한 구도 안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채 경쟁을 벌이는 두 집안의 자녀들이 그 주인공이다. 욘(앨빈 글렌홀름)과 닌니(프리다 구스타프슨)는 스파이들의 주 무대였던 냉전 시대답게 상대방의 적진에 뛰어들어 정보를 빼오거나 방해하는 방식으로 집안의 운영에 기여해왔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의 온갖 메신저 어플로 24시간 연결되는 시대지만, 20세기의 욘과 닌니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메시지를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고전적 방식으로 서로를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둘은 서로가 더 이상 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름 한철의 분주한 축제 시즌이 저문 뒤,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야 했던 기이한 간극을 이해하는 놀이공원 키즈로서의 허무함을 아는 유일한 상대이기도 한 것이다. 또 하나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게 탄생한다.

<어트랙션>(2019)

금지된 사랑에 빠진 연인이라는 뚜렷한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예상치 못한 전개와 호흡으로 나아간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스스로 괴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면이 있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호흡을 느리게 만들며 멜로를 유예시키기도 하고, 화려하게 반짝이는 놀이공원의 풍경은 돌연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감독이 추구한 스타일인 동시에 영화가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혼란스러운 시대와 너무도 다른 집안 배경 안에서 사랑을 이어나갔던 두 사람의 젊은 시절 일상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환상과 역경, 양 극단의 레일 위에서 매일같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심경을 드러내는 과감한 표현방식들 역시 <어트랙션>을 독특한 개성의 영화로 기억하게 한다. 닌니의 감정을 묘사하는 대목들이 특히 그렇다. 부모의 입장에서 정신병력을 지닌 환자인 닌니는, 홀로 있을 때 곤충이나 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또한 욘과 아버지를 둘러싼 오해로 인해 상처받고 상심한 닌니가 주저앉은 땅이 서서히 내려앉고, 그의 주변으로는 차디찬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식이다. 섣부르게 다가갈 수 없는 두 사람이 꿈에서 연결되는 장면 역시 아름답다. 물안개가 자욱한 숲속에서 서로에게 겨눈 이들의 총구에서 발사되는 것은, 총알이라는 무기가 아니라 흩날리는 장미꽃이다.

공간 배경의 환상성으로 멜로의 클리셰들을 극복해나가는 이 영화를 보며, 세상의 많은 것들이 좀 더 풍성한 색들을 마음껏 표현하며 유지되기를 바라게 됐다. 비루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결국 누군가의 상상일 것이기 때문에. 고아원 앞을 지나던 욘과 닌니가 즉석에서 마임을 선보이고 작은 마술을 선보일 때, 창 너머로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던 아이들의 표정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나의 표정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트랙션>(2019)
Swoon
감독
 만스 말린드, 비욘 스테인
주연 앨빈 글렌홀름, 프리다 구스타프슨
시놉시스
스톡홀름 최대의 놀이공원 ‘그뢰나 룬드’와 ‘페어 그라운드’. 그곳을 운영하는 닐손가와 린드그렌가는 오랜 앙숙 관계로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닌니 닐손’과 ‘욘 린드그렌’이 마법처럼 사랑에 빠지며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하는데… 당신을 사로잡을 단 하나의 ‘어트랙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