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최유월

그녀의 아들이 뉴욕을 선택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사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었으리라. 조지아에서 한적한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지낼 수도 있었고, 프랑스에서 작은 파티오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밤을 보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우유니 사막에서 끝없이 하늘과 맞닿아있는 새하얀 호수 한가운데 서보았을 수도…. 무엇이 되었든 그 애에겐 좀 외로워질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자해를 시도하다 함께 방을 쓰는 자메이카 사람에게 들켜 체포됐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고, 피를 흘리거나 다른 누군가를 다치게 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룸메이트가 신고를 하는 바람에 구금되었다. 삭막한 곳은 아니에요. 아들은 모든 것이 괜찮다고 했다. 그냥 지저분한 작은 방 안에 혼자 있는데 창이 있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볼일까지 본다고 했다. 그녀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괜찮다니까요. 어쩌다 가끔이에요. 누군가 항상 절 지켜보진 않아요.
그녀는 급히 미국으로 오느라 관광 비자로 올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신분으로는 면회조차 불가능했다. 오히려 국가 방문 목적의 이유를 속인 것으로 보여 불리해질 수도 있었다. 만나 본 한인 변호사는 애초에 이 일은 하나의 오해일 뿐이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의 아들은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헤치려고 했을 뿐. 다행히 추방이나 교도소 같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진 않을 것이라고 하니, 이곳의 느려터진 일 처리를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정말 관광객처럼 주변을 구경하며 지냈다. 록펠러에 올라가 추위를 견디며 일몰과 야경을 마주했고, 휘트니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기도,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늦은 밤까지 숙소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세차게 부는 바람과 덜컹거리는 낡은 창문, 좀처럼 끊이지 않는,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사이렌 소리…….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 후 그녀는 전염병으로 인한 도시 봉쇄령 때문에 한동안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아들을 만나는 일이 이런 식으로 늦춰질 줄은 몰랐다. 최대 감금일인 5일을 훌쩍 넘었지만 특수한 상황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녀는 슈퍼에서 파는 차가운 샌드위치를 씹으며 아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좀 소심한 아이였지. 복잡한 서울 생활을 싫어했고, 한 직장에 오래 있지도 못했다. 그 애는 늘 사람들과 모든 것으로부터 떠났다. 혼자 있고 싶어 했고, 늘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꿨다. 자신이 속할 수 있는 곳.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둘 수 있는 곳…. 그녀는 아들이 여기저기로 떠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저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불가능하더라도, 매일매일 조금 더 나은, 미세하지만 조금 더 근사한 방향으로 가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런 따뜻한 세계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를.
“내일부터 뉴저지 쪽에서 락다운이 해제될 모양이야.”
며칠 전 통화에서도 아들은 쾌활하게 잘됐다고만 했다. 이제 드디어 저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도 담당 변호사로부터 소식을 들은 후였다. 그래. 정말이지 다행이야. 그녀는 그동안 아들에게서 여러 장소를 추천받아 다녔다. 이제 가보고 싶은 곳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 외식을 하고 차를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녀는 늦은 오후에 열차를 탔다. 이제 며칠 후면 아들과 함께 돌아가거나, 원한다면 계속 이곳에 머물게 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또 다른 제삼 세계로 떠나고 싶다고 할지도 몰랐다. 과연 나는 그 애를 말릴 수 있을까. 그녀는 천천히 이마를 짚었다. 오래전 봉쇄령이나 바이러스조차 없었던 시기에 그 애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갓 이곳에 지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2시간 넘게 열차를 타고 코니아일랜드로 갔다고 했다. 미국의 해변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었지만, 한적한 모습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그는 호기롭게 윗옷을 벗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평일 대낮의 해변에는 몇몇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피부를 태우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점점 더 멀리 헤엄쳤다. 그는 앞으로의 날들을 기대했을 것이다. 낙관과 희망. 드디어 마침내 이곳이라는 생각. 마치 그가 뻗는 손 앞에, 바로 앞에 있는 것만 같은 무언가. 잠시 후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구경하는 한 가족을 보았다. 그들은 돗자리에 앉아 수영하는 그를 오래도록 빤히 지켜보았다. 그가 똑똑히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그들 가족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도전적인 그의 자세를 더욱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하얀 얼굴의 그들은 넷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다. 그는 그들을 의식하며 조금 더 멀리 헤엄쳐나갔지만, 뒤돌아보았을 때 아이들의 아버지가 웃음을 띤 채 손차양을 만들며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괜한 자격지심이라고 말했다. 너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영어가 능숙하지 않고, 이제 막 지내기 시작했잖아. 하지만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그녀는 아직도 아들이 왜 자기 자신을 헤치고 싶어 했는지 묻지 못했다.
그녀가 환승한 열차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에 있던 노년의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인은 마스크를 낀 채 양손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었다. 살집이 있는 데다 무릎마저 좋지 않은지 그녀는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좌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힘든 듯 짙은 숨소리를 뱉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어쩐지 자신의 얼굴이 조금 뜨거워진 것 같다는 느낌을 끝내 떨칠 수가 없었다.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시위가 한창 중이었다. 얼마 전부터 이곳에선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는 시위가 점차 퍼져가고 있었다. 저녁이 되었지만 여름의 초입이라 해가 길어져 저 멀리 마천루 위로 구름이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인파들을 피해 가까운 가게를 찾았다. 목이 말랐다. 하지만 들어간 작은 식료품점 안에는 진열대가 모조리 쓰러진 채 물건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주인으로 짐작되는 인도 남자가 엉망진창인 물건들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사이, 가게 안에서 불쑥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소년이 튀어나왔다. 소년은 손에 젤리나 트윅스 같은 과자를 한 움큼 움켜쥐고 있었다. 안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막아섰다. 아이는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리더니 있는 힘껏 그녀를 밀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녀는 중심을 잃었다. 급소를 맞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바로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기댈 곳을 찾아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간신히 가로수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의 어깨에 자꾸만 부딪혔다. 그 순간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힘겹게 고개를 들자, 주변 건물의 열린 창문 사이로 수십, 수백 명의 손이 보였다. 오후 7시가 된 모양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이 시간이 되면 의료진을 향해 응원과 지지, 감사의 박수를 치는 운동을 했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최전선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그래, 그들은 손뼉을 치면서 자신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쩐지 서글픈 마음으로 창밖으로 내민 색색깔의 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여느 때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매일매일 조금 더 나은, 미세하지만 조금 더 근사한 방향으로 가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런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

* [24분의 1]은 젊은 소설가 24인이 매월 한 명씩 참여하여 24시간을 채우는 짧은 픽션 코너입니다. 참여 소설가들에게 특정한 ‘시간’이 창작 소재로 주어집니다. 2019년 1월에 시작해 2020년 12월에 완성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