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극장에게
식당에서는 밥을 먹는다. 병원에서는 진단과 처방을 받는다. 그리고 극장에서는, 영화를 본다. 지금껏 이 사실에 별다른 의문을 품어본 적은 없었다. 극장은 존재 목적이 뚜렷한 공간이다. 거기에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뭘 하겠는가. 물론 언제 어디에서나 영화를 즉각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OTT서비스는 일상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 영화는 극장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그곳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수가 어둠 안에서 특정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시청각적 경험을 위해서.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과 생각들을 나누는 공간으로서.
그런데 전염병의 시대가 모든 것을 바꿨다. 극장을 찾는 일일 관객 수는 연일 바닥을 쳤다. 공공 이용시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시기에 전국의 극장들은 대책 없이 휘청였다. 그 안에서 누려왔던 ‘공통의 경험’이라는 말은 무력하게 느껴졌다. 더 정확하게는 그런 게 가능하면 안 되는 시대처럼 느껴졌다. 극장이라는 단어는 가까운 시일 내에 사어(死語)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공간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나는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라는 행위를 낯설게 느끼고 있었다.
그 뒤로 희한한 증세가 생겼다. 극장을 떠올리기만 해도, 극장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비 오는 날 극장 의자에서 맡는 특유의 꿉꿉한 냄새마저 그리웠다. 숨 쉬듯 드나들던 곳에 마음 놓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은 공간을 향한 그리움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늘려놓았다. 급기야 나는 어느 개봉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한숨을 쉬다가 그만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야 말았다. 문제의 영화는 <국도극장>. 낡은 극장 외관 앞에 점처럼 두 남자가 앉아있는 모습을 담은 포스터였다.
심지어 이 영화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미 봤다. 그때는 따뜻한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면서 사라진 낡은 극장들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었다. 담배연기 자욱하던 상영관과 삐걱대는 의자, 영사실 옆을 지나갈 때 들리던 필름 돌리는 소리, 그림장이들이 손수 그렸던 그림 포스터 같은 것들. 대부분 잊고 살지만 가끔은 그리운 옛날 극장의 풍경이 <국도극장> 안에 있었다. 그건 여전히 좋았고, 다시 보니 더 좋아지는 것들도 있었다. 세상의 시간이 바삐 돌아가는 동안, 그 속도에 발맞추지 못해 허덕이다가 어느덧 안쓰러운 뒷모습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극장으로 모여든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극장은 그 모두를 품어준다.
만년 고시생이었던 기태(이동휘)가 고향 벌교로 돌아와 재개봉 전용 극장인 국도극장에 취직하는 걸 시작으로, 영화는 기태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한 페이지씩 가만히 들춰내기 시작한다. 생기를 몽땅 잃어버리고 온 듯한 얼굴로 보아, 기태의 서울 생활은 각박했을 것이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기태의 어머니(신신애)의 삶이라고 평탄했겠는가. 자식 둘을 뒷바라지해 키워낸 어머니의 주름진 손은 이제 자꾸만 티비 리모컨을 냉장고에 가져다 넣는다. 집도 절도 없이 극장에서 먹고 자는 간판장이 오 씨 아저씨(이한위), 가수의 꿈을 키우는 기태의 동창 영은(이상희), 아픈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하고 이민갈 생각이나 하는 듯했던 기태의 형(김서하)에게도 저마다 말 못 하고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존재한다. 그들 모두가 각자의 인생 안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는 동안,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서있던 건 낡은 극장뿐이다.
오 씨 아저씨와 기태는 극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면서 실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이 장면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일종의 영화적 리듬을 만드는 사이, 뒤로는 <흐르는 강물처럼>과 <박하사탕>을 비롯한 추억 속 명화들의 간판이 차례로 걸린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소리 없이 전하는 토닥임을 느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다가 때로는 어딘가에 잠시 고여있어도 좋다는. 그리고 인물들을 품는 듯 자리한 국도극장의 모습으로부터 ‘극장의 마음’ 역시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그 공간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극장 역시 영화와 관객 그리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 그게 극장의 궁극적인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
시간이 바꿔놓는 풍경들이 있다.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 시간 이후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불확실함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향한 마음은 확고해져만 간다. <국도극장>은 내게 그중 하나가 극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단단히 깨닫게 해준 영화다. 개봉 후 극장 맨 구석 자리에서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친애하는 극장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위로라는 따스한 화답이 돌아왔다.
Farewell My Concubine
감독 전지희
주연 이동휘, 이한위, 신신애, 이상희, 김서하
시놉시스
만년 고시생 기태가 고향 벌교로 돌아왔다. 사법고시가 폐지되어 고시생이라는 그 서글픈 타이틀마저 이제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유배지로 향하듯 돌아온 고향엔 그다지 반가운 사람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다. 생계를 위해 낡은 재개봉 영화관 ‘국도극장’에서 일을 시작하는 기태. 간판장이 겸 극장 관리인 오 씨는 ‘급하시다 해서 잠깐 도와주러’ 왔다는 기태가 못마땅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동창생이자 가수 지망생 영은은 기태와 달리 24시간을 쪼개 쓰며 여러 일을 전전하고, 밤낮없이 술에 취해 있는 오 씨는 기태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자식들을 위해 몸 아픈 것도 돌보지 않는 엄마는 여전히 안쓰럽다. 기태는 왠지 이 사람들과, 다시 돌아온 고향이 싫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