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코나

하늘은 얼마나 또렷한 파랑인지 완벽한 파랑이 있다면 꼭 이런 색일 것만 같다. 그 너른 파랑 캔버스엔 포스터컬러로 그려 넣은 것 같은 진한 흰색 뭉게구름이 큼직하게 두어 개. 바람 한 점 없이 햇살이 따갑고 매미가 사방에서 사정없이 울어대는 여름날이다. 바람에 커튼이 살랑대는 교실에서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다. 남학교 교실의 요란함 뒤로 들리는 BGM은 코나 1집에 있는 “여름의 끝”.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이미지에 이 노래가 삽입된 걸 봐서는 아마 중학 시절 언젠가다. “서태지와 아이들” 붐으로 좀 논다는 동네 엉아들은 모두 두건이나 벙거지를 쓰고 “난 알아요”의 영어 버전을 원곡 뺨치게 어설픈 발음으로 따라하며 다니던 시절. 그 시절에 코나를 듣는 사람이 학교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있었다. 딱 한 명. 심지어. 같은 반에.

남자 중학교에서 015B, 푸른하늘, 이오공감 등을 듣는 아이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고 꼬꼬마 리스너들 사이에서도 비주류였기 때문에 은근히 서로 친해서 좋아하는 앨범을 자주 돌려 듣곤 했다. 돌려 듣는다기보다 우린 정말 좋아하는 곡이 있으면 반드시 들려줘서 이게 얼마나 좋은 곡인지 깨닫게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리스너계의 강압적인 홍익인간들이었다. 코나 1집을 처음 들은 것도 그런 계몽(?) 정신 덕이었다.

난 김태영의 미성이 부담스러웠는데 기회가 날 때마다 내 귓구멍을 공략하는 친구의 집요한 이어폰 어택 덕에 점점 그 예쁜 보컬에 익숙해졌다. 사실 거의 전곡을 인생 노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코나 1집의 모든 곡을 좋아하지만 코나라고 하면 가장 먼저 “여름의 끝”이 생각나는 것은 저 위에 묘사한 기억 속 한 컷 때문이다. 마치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어느 장면 속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목에 타월을 두르고 러닝 중인 만화 주인공이 나를 멀뚱히 쳐다보며 지나쳐 갈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곡이란 생각을 20년도 넘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년 전 우연히 배영준의 이런 인터뷰를 봤다.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고전인 [터치]나 [H2]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나는 그 여름 하늘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아, 나만 몰랐구나. 아무도 날 속이지 않았지만 괜히 드는 배신감. 뒤통수가 저릿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음악만 들어도 의도한 특정 작품이 떠오르게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재능임이 틀림없다.

요즘 시티팝이 유행하면서 나도 플레이리스트에 시티팝을 하나둘 넣기 시작했는데 그때 문득 오랜만에 떠오른 곡이 “여름의 끝”이었다. 시티팝을 들을 땐 몽글몽글한 베이스 라인을 위주로 들으면서 별이 쏟아지는 신스와 샬랄라한 코러스가 마음을 얼마나 설렁설렁하게 하는지 나름 선무당처럼 따져보는데 오랜만에 들은 이 곡은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여름날이고 뭐고 아무것도 연상되지 않았다. 오랜 친구를 만났는데 기대만큼 즐겁지가 않았다.

이 노래도, 그 시절의 여름날도,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도 나이를 먹지 않았는데 그사이 나만 나이를 잔뜩 먹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재고 있다. 아주 재수 없게 팔짱을 끼고.

이 노래가 너무 서운해할 것 같아서 그 후론 억지로라도 이 곡이 나오면 따져 듣지 않고 넋을 놓고 듣는다. 그리고 애써 그 여름날을 떠올린다. 전처럼 쨍한 파란 이미지도 아니고 매미 소리가 들리지도 않지만 요즘은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아스팔트의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제법 느껴진다.

곧 여름이다. 이번 여름엔 이 노래가 그 시절처럼 들려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