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슬픔만으로 기억되기엔 너무 찬란했던 남자
세상엔 유달리 슬픔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장국영이 그렇다. 그토록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사실은 남 모를 어둠에 사로잡혀 고통받다가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탓이다. 17년이 지나도 그 슬픔을 다 이겨내지 못한 이들은 해마다 장국영의 기일인 4월 1일을 전후해 온라인에서 그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그의 꾸밈없는 마음씨가 잘 드러난 일화들을 소개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모아 상영회를 진행한다. 죽은 장국영이 돌아올 수는 없지만, 기억을 모으면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따뜻함만큼은 마치 생시처럼 살아 숨쉬게 할 수 있으니까.
장국영이 살아 생전 남긴 작품은 무협부터 느와르, 코미디, 멜로까지 다양한데도, 유달리 슬픈 작품들 위주로 회자되는 것 또한 그 슬픔 때문이리라. 사람들은 <아비정전>(1990)을 기억하며 ‘일평생 하늘을 맴돌다가 생을 마감할 때 단 한 번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발 없는 새가 마치 장국영의 최후를 닮았다고 말한다. 늘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혼자 남겨져 우는 <해피투게더>(1997) 속 보영에게서 언제나 애정에 목말랐다던 장국영의 얼굴을 발견하고 함께 울고, <영웅본색2>(1987)에서 마지막 숨을 모아서 딸 이름을 지어주고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절명하는 자걸의 마지막을 보며 서글퍼한다.
그리고, 장국영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패왕별희>(1993)가 있다. 중일전쟁과 국민당 괴뢰정부, 국공내전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처절한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데이(장국영)는 예술가로서의 긍지와 평생을 걸었던 사랑 모두를 잃는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누구보다 외로웠지만, 그 탓에 평생을 사랑한 상대 샤오러우(장풍의)조차 데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이 주워 와 제자로 길러낸 샤오쓰(레이한)는 이념에 경도되어 스승인 자신을 비난했다. 사랑과 예술 모두를 잃은 데이는 문혁의 칼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그저 숨 죽이고 살다가, 세상이 조용해진 뒤에야 노구를 이끌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체육관을 무대 삼아 샤오러우와 함께 마지막으로 합을 맞춰본다. 그리고, 샤오러우를 사랑하는 데이이자 패왕 항우를 사랑하는 우희로서 죽는 것으로, 데이는 빼앗겼던 사랑과 예술을 일거에 다시 완성한다.
장국영은 천카이거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스스로 “나 자신이 데이에요.”라고 말했을 정도로 데이의 외로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평생 경극에 몸 담아왔던 스승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하고 헌신적인 자세로 경극의 동작들을 익혔고, 잠시라도 몰입이 깨질 것을 염려해 휴식시간에도 의상을 벗지 않았다. 장국영은 자신이 장담했던 대로 데이와 혼연일체가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천카이거 감독은 “그는 정말 데이처럼 살다가 떠났다.”는 말로 그를 기렸다. 사람들이 장국영을 이야기할 때 <패왕별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장국영이 그토록 슬프고 어두운 역할로만 기억되는 게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장국영이 눈부시게 그려낸 슬픔과 고독을 기억하고 그의 거짓말 같은 죽음을 애도하느라, 그가 연기한 해맑고 찬란한 청춘의 발랄함을 우린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 그는 <가유희사>(1992)에서 걸걸한 매력의 아가씨 무쌍(모순균)과 함께 꽁냥거리며 애정을 쌓아가던 소씨네 소심한 셋째 아들 상소였고, 아해(주윤발)와 함께 춤추듯 레이저를 피해가며 명화를 훔치던 <종횡사해>(1991) 속 도둑 제임스였다. 저렇게 어벙해서야 어떻게 세금을 걷나 싶었던 <천녀유혼>(1987) 속 순진한 서생 영채신이었고, 무엇보다 칼질도 제대로 못 하면서 요리를 배워 캐나다로 취업 이민을 떠나 야마구치 모모에를 닮은 여자친구와 재회하겠다고 날뛰던 <금옥만당>(1995) 속 건달 조항생이었다.
<금옥만당>은 전성기의 서극이 만든 영화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물론 줄거리만 크게 적어 놓고 보면 홍콩영화의 전성기다운 작품이긴 하다. 개인사의 아픔 때문에 강호를 떠난 은둔고수가 나오고, 기연으로 얽힌 일군의 청년들이 문파를 일으키기 위해 그 은둔고수를 찾아내어 다시 강호로 불러내며, 최후의 승부에서 깊은 내공으로 승리를 거둔 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니까. 하지만 <금옥만당>은 검과 살수들이 나오는 대신 중식도와 셰프들이 나오는 요리영화다. 심지어 전체 작품에서 가장 몸값이 높았을 장국영과 원영의가 맡은 인물인 조항생과 구자혜는, 극이 끝나는 지점까지 좀처럼 요리실력이 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요리 실력이 조금도 성장하지 않는 이 기괴한 요리영화 속의 장국영은, 그야말로 티끌 하나 없이 시종일관 해맑고 경쾌하다.
장국영이 아무 근심 없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목말랐던 사람에게, <금옥만당>은 원없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요리 경연장에서 중식도를 야구배트처럼 휘두르며 아까운 식재료를 힘껏 두들겨 패는 건달 조항생, 자기 몸집만한 생선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조항생, 사채꾼 후배들에게 현란하게 복잡한 암산 문제를 내면서 의기양양해하는 조항생, 빨간 머리의 구자혜를 바이크 뒷자리에 태우고 깊은 밤의 홍콩거리를 달리는 조항생, 폐인이 된 요걸(종진도)을 아내와 다시 연결시켜 주기 위해 뻔뻔스레 사기극을 벌이는 조항생… 홍콩 코미디 특유의 말장난과 정신 없는 슬랩스틱, 맥락 없는 패러디와 뻔뻔한 분장쇼에 이르기까지, <금옥만당> 속 장국영은 영화 내내 크게 소리치고, 경쾌하게 뛰고, 시원하게 웃는다.
요리는 쥐뿔도 못하는 주제에 늘 요리사가 되어 캐나다로 떠날 거라 외치는 건달 조항생의 낙천성은 전염성이 강해서, 보고 있자면 관객도 함께 덩달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흥을 옮는다. 그건 아마 우수에 젖을 때면 세상 그 누구보다 슬퍼 보이지만, 웃고 떠드는 순간에는 세상 시름 모두를 다 내려놓은 장난꾸러기 같았던 장국영이 연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염병은 언제쯤 기세가 누그러질지 가늠할 수 없고 세상은 더 이상 어제와 같지 않을 거라는 불안이 모두를 감싸는 시대에, 꺾이지 않는 낙천성으로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가 우리 곁에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리라.
SARS가 돌던 4월의 홍콩에서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났다. 코로나19가 도는 5월의 한국에서 그를 기억하는 일은, 서글프고 또 서글픈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끔은, 장국영이 누구보다 티 없이 맑은 청춘을 연기하며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그저 슬픔과 상실만으로 기억하기엔 그는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했으므로.
감독 서극
주연 장국영, 원영의
시놉시스
전국 요리 대회 우승 후보인 요걸은 아내가 위독하자 결승전을 기권하지만, 그 뒤 아내가 떠나자 홀로 남아 술에 취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편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캐나다로 가서 요리사가 되고 싶어하던 조항생은 우연히 용곤보 셰프의 소개로 만한루에 들어가 요리를 배운다. 하지만 만한루에 위기가 닥치자 조항생은 사장 딸인 구조풍을 도와 만한루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