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최유월

그 할머니는 책을 모았다. 책등이 바랜 책만 모았다. 책등에는 검정 글씨만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도 괜찮다. 그게 아니면 몇 년 뒤에 책의 제목을 못 알아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색에 따라 자외선에 취약한 정도가 달랐다. 노랑은 금세 날아가고 빨강은 분홍이 된다. 진한 파랑은 오래 남지만 보라와 비슷할수록 초록에 가까워지다가 타고 남은 재처럼 사라진다. 흰 바탕에 적은 제목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책등이 바랜 책은 수수께끼 같았다.

<               을 맑게 하는            가지            >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뭘 맑게 한다는 건가요?”
“피겠지.”
“피을? 을이랑 안 맞아요. 혈관을? 정신을? 그래, 정신이야. 정신을 맑게 하는 몇 가지…… 음식? 생각? 할머니, 제발. 읽어보면 안 돼요? 궁금해서 죽을 것 같아요.”
“손대지 마라. 그깟 제목 알게 뭐냐. 정신이라고? 네 놈이나 정신 좀 차려라. 쓸데없는 데 관심 갖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올 때, 할머니는 책을 가지고 나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도서관에서 쓰는 나무 카트를 끌고 다녔다. 5월이 좋다고 했다. 책을 말리기엔 5월이 제격이야. 5후 다섯 시의 볕이 좋지. 공원에는 목줄을 매지 않은 개들이 뛰어다녔다. 할머니의 책은 하루에 다섯 권씩 날개를 펼쳤다. 나는 딱 한 번 할머니의 책을 몰래 읽어본 적이 있다.
<                 을 싫어한                   의 이야기>였다. 표지를 넘기자 진짜 제목을 읽을 수 있었다.

<우유 배달을 싫어한 우유 소년의 이야기>

우유 소년은 우유 모자를 쓰고 우유 배달을 합니다. 우유 소년은 우유 모자가 부끄러워서 매일 울면서 뜁니다. 우유 소년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입니다.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내가 그 책을 읽은 건 할머니에게 비밀이다. 할머니의 책을 읽은 건 그 한 권이 전부였다. 할머니가 비둘기에게 식빵을 뜯어 주는 틈을 타서 빠르게 훑었다. 공원에 오는 사람들은 전부 개를 데리고 나왔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비둘기를 몰고 다니는 걸 싫어했다. 개는 되지만 비둘기는 안 된다. 우리 개는 내가 씻길 수 있지만 비둘기는 자기들끼리 더럽게 다니니까. 나는 사람들도 이해되고 할머니의 맘도 이해했다. 저 개는 누군가가 밥을 주지만 비둘기는 자기들끼리 더러운 걸 주워 먹어야 하니까.

할머니는 젊었을 때 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남의 글을 읽고, 생각하고, 뾰족하거나 동그란 기호를 원고에 그려 넣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책이 되어가는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때 남들처럼, 어쩌면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고, 밤늦게 집에 들어온 탓에 볕을 쬐고 있는 오후 다섯 시의 책장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하게 책등을 태우고 있을 때도 할머니는 남의 글을 읽고 있었다.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한 어느 저녁에 형편없이 날아간 책등의 글씨들을 보다가 할머니는 슬퍼졌다고 한다. 책 따위가 뭐람, 하며 일을 그만두었다. 고추 말리듯 책을 꺼내 놓는 건 할머니의 추억하는 방식이었다.

한동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됐다.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공원에 찾아왔을 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는 할머니의 유언장을 집행하는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누렁이를 데리고 매일 오후 다섯 시에 공원을 찾는 청년’을 만나러 왔는데, 누가 봐도 나인 것 같아서 말을 건다고 했다. 내 강아지는 공원에서 유일하게 품종견이 아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비 오는 날 편의점 앞에서 만났다. 젖은 채 떨고 있어서 닭가슴살 캔을 따주었는데 떠나지 않았다. 그 뒤로는 나도 그 아이를 떠난 적 없다.

“어떻게 저인 줄 아셨어요?”
“쟤가 자꾸만 그쪽을 쳐다봐요.”
“수수께끼에 강하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죠?”
“글쎄요. 종이 위에 있는 것 말고는 젬병이에요. 모든 책을 당신에게 남기셨어요. 안 받으시면 제가 대신 처리해드립니다. 그것까지 유언장에 포함돼 있어요.”

나는 여자가 건넨 서류에 내 이름 두 글자를 흐트러지지 않게 적었다. 처음으로 한 글자가 모자란 기분이었다. 뭐라도 더 적어야 할 것 같은데. 책이 가득 담긴 상자를 품에 안고, 리드줄을 손가락에 걸고, 처음 알게 된 할머니의 이름을 되뇌며 집에 돌아가는데 비가 내렸다. 초여름의 습기에 쉰내가 섞여 있었다. 다행이었다. 비가 와서 다행이야. 우유 소년도 좋아하겠다. 우유 소년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내 방 한구석에 상자를 밀어두고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할머니가 알려주지 않을 때는 너무 알고 싶었던 책의 내용이 이제 아무 상관 없게 느껴졌다. 비 오던 날 편의점 앞에서 나는 떠난 사람 뒤에 남겨져 있었다. 너무 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 갈 곳 없는 강아지를 만났다. 그때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강아지를 씻기다가 젖은 채로 꼭 끌어안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책등이 바란 책의 내용 따위는 아무 상관 없는 거라고. 굳이 책을 펼쳐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할머니를 생각하다가, 오래전에 써야 했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뾰족하고 동그란 글씨로 한 글자씩 적어 나갔다.

나는 그때 믿던 걸 아직도 믿고, 가끔씩 꿈에 나타나는 너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좋은 사람이냐고. 어째서 당신 같은 사람이. 나는 다짐한다. 이제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한 날에            한 것들이            인 것을 이제 안다고.              라고.              는              지만           였어야            했다.               다. 이제 전부              다. 하지만 아직도              합니다. 너무 많이              해서             합니다.              하니?             하던             는              로              해줄래?               구나.               였구나.            하는         는             로             하자.             입니다.             이              것은 당신이             인 겁니까?             입니까?          는             로             됩니까? 나도             하겠습니다. 내가           입니다. 안녕.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늘             하십시오.               에게. ■

* [24분의 1]은 젊은 소설가 24인이 매월 한 명씩 참여하여 24시간을 채우는 짧은 픽션 코너입니다. 참여 소설가들에게 특정한 ‘시간’이 창작 소재로 주어집니다. 2019년 1월에 시작해 2020년 12월에 완성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