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의 순간
청탁이 처음 들어왔을 때 이걸 수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옆에 있던 애인은 음악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자 웃었다. 넌 음악을 안 듣잖아. 그렇다. 나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아니, 소리 자체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같이 들고 다니는 물건 중 하나는 귀를 덮는 차폐식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인데 음악을 잘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아무런 음악도 흘러나오지 않는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나는 귀에 전원 버튼이 있어 소리를 켜고 끌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음악이 좋아, 저런 음악이 좋아, 하고 말할 때면 나는 나의 성장 배경을 떠올린다. 엄마와 아빠는 입말 대신 손과 표정을 움직여 말하는 농인이다. 그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난 나는 음성언어 대신 손가락을 움직이며 수어로 옹알이를 했다. 내게 집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부모는 목소리를 높여 대화하는 대신 얼굴을 마주보며 손과 손을 부딪쳤다. 소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요함 속에서 미세한 소리는 더 크고 명료하게 확장된다. 보라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 대신 “보아!”라고 부르는 엄마의 데프 보이스(Deaf Voice), 집안의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주파수가 맞춰지지 않은 라디오 소리, 때로는 귀가 찢어질 듯 울려대는 텔레비전 소리 같은 것. 그것들이 내게는 디폴트값, 기본 설정 값이 되었다.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세습되는 문화적 취향 같은 것 역시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니었고 책을 읽지도 않았다(정확히 말하자면 문자언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소리를 들을 수 없고 한글 자막이 없으니 영화 혹은 연극을 보러 극장에 가지도 않았다.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매체라고는 텔레비전이 전부였는데 그것 역시 애매했다. 수어통역과 자막이 없었으니까. 집안의 만능 수어통역사였던 나는 텔레비전 옆에 앉아 드라마 속 주인공이 왜 뺨을 맞았는지, 왜 바람이 났는지, 어째서 헤어져야 하는지를 수어로 옮겼다. 그런 내게 온전히 내러티브에 몰입하여 배경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빠져들 순간은 없었다.
그렇게 별다른 취향 없이 자랐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이 뭔지 물어볼 때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래도 굳이 여러 번 물으면 고심 끝에 다 자라서 보게 된 영화들의 배경 음악을 떠올렸다. 선명한 이미지와 내러티브와 함께 기억되는 소리들. 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세상을 만나고 정보를 습득하는 부모에게서 내가 물려받은 것.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몰랐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새 영화를 만들 즈음이었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헤맬 즈음,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 <열대병>을 봤다. 열대 우림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호랑이를 마주한 후였을까 혹은 태국의 한 인디밴드가 만들고 부른 이 노래가 흘러나올 즈음이었을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을 꾹 참았다. 고요함 속에 음악이 깔렸다. 태국어로 된 가사의 뜻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은, 그 자체로 내 삶을 구하는. 그런 고요함의 순간은 아주 종종 나를 멈춰 세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