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자발적으로 위치 추적을 당하는 앱 ‘Zenly(젠리)’
#2010년. ‘오빠믿지’라는 앱이 있었다. 이름부터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보이는 이 앱을 커플이 설치하면 서로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었다. 연애 상대방이 ‘딴 짓’을 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이 앱은, 런칭 초기에는 사용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상대방에게 실시간 위치 정보를 공유하는 기능을 제공해 개발자가 불구속 입건되기까지 했다.
10대의 행동 양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요즘 청소년은 카카오톡도 안쓰고 페이스북 메신저를 쓴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어른’들이 많았다. 자신과는 상당히 다른 10대들의 모바일 서비스 사용 행태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PC 보다 모바일 기기를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이 세대를 ‘Z세대’로 칭하고 있다. ‘오빠믿지’가 나타난지 10년이 지난 2020년. 한국의 10대들에게 ‘오빠믿지’를 생각나게 하는 Z세대 서비스가 보급됐다. 이름은 바로 Zenly(이하 젠리).
젠리는 보통의 서비스와는 다르면서도 쓸모 없어 보이는 이상한(?) 기능들만 탑재 되어있다.
– 친구들과 이모지,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메신저
– 친구의 실시간 위치와 이동 속도, 잔여 배터리 용량 조회
– 내 위치와 이동 속도, 잔여 배터리 용량 정보를 친구가 확인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공유
– 내 친구들이 만나면 만남 사실을 나에게 알림
– 내 친구가 해외 여행을 시작하면 나에게 알림
– 특정 지역(시,군,구 단위)을 많이 탐험한 사람에게 “탐험왕” 뱃지 부여
– 친구 초대시 앱 아이콘 선택 변경 가능
젠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실시간 위치 추적 메신저’다.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해 등록된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함께 아는 내 젠리 친구가 만날 때 마다 “지금 내 친구 A와 B가 만나고 있다”는 알림을 보낸다. 사용자는 자발적으로 본인의 위치 정보를 젠리에 공유하고, 내 친구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확인한다.
별 특징 없어 보이는 이 앱은 이미 2019년 상반기에 국내 사용자 수를 100만 명이 넘었다. 국내 100만 사용자를 돌파한 앱 서비스는 널리고 널렸지만 젠리가 기록한 이 수치는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이 서비스는 국내 사용자 100만 명을 달성하는 동안 한국 내 마케팅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과 거의 모든 사용자가 10대 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케팅 없이 10대 사이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점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앱의 존재를 아는 성인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철저히 10대의 안에서 작동되도록 기획된 서비스이며,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 지금 어디야?”, “야 우리 반 애들 같이 볼까?”, “나 지금 남친이랑 만나는 중”, “지금 버스 타고 거기로 가고 있어”, “아, 배터리 다 떨어져서 곧 폰 꺼질 듯” 등의 10대 친구에서 나오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지도 하나로 대체 가능하다. 거기에 조금 더 필요하면 이모지를 쓰면 되고. 사실 대다수의 성인이 그러하듯 ‘실시간 위치 추적’은 사용자로서 거부감이 드는 기능이다. 하지만 그 시대 청소년이 충성심을 갖고 사용하는 서비스에서 나타났던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비공식)”, “인스타그램 스토리 조회자 기록” 등 사용자들이 원하는 추적성 부가 기능임에는 틀림 없고, 지금을 해당 기능에 거부감을 느끼는 성인도 ‘그 때’는 열혈이 쓰던 기능이었다. 어른들이 쓰지 않는 메신저라는 특장점까지 더해져 젠리의 커뮤니케이션 완성도는 더 높아진 것.
버디버디가 그랬고, 틱톡이 그랬고, 페이스북 메신저가 그랬고, 유튜브 메신저가 그랬고, 스냅챗이 그랬듯 10대 커뮤니티 내에서 작동하는 새 커뮤니케이션 툴이 젠리인 셈이다.
애플은 iOS를 13 버전으로 업데이트 하면서 백그라운드에서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앱이 있을 경우, 사용자에게 해당 내용을 인지시키는 경고창을 노출하고 있다. 해당 경고창은 문제의 앱이 사용자가 앱을 실행시키지 않는 백그라운드 환경에서는 위치 정보 수집을 허용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앱들이 이 경고창을 바탕으로 백그라운드 위치 정보 수집이 막히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모든 젠리 이용자에게 해당 위치 수집 경고 알림이 뜨고 있다.
위치 수집을 거부하도록 유도하는 해당 경고 알림이 주 1회씩은 노출 됨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10대 젠리 유저가 굳이 사생활을, 본인의 실시간 위치를 공유하겠다고 GPS 위치 추적을 허용하면서까지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가 바로 젠리다.
AR 스티커 카메라로 소통하는 방법을 Z세대에게 유행시킨 스냅챗이, ‘스토리’라는 커뮤니케이션 포맷을 만들어 Z세대에게 유행시킨 바로 그 스냅챗이 다시 전 세계 Z세게에게 유행시킨 커뮤니케이션 포맷은 ‘실시간 위치 추적’ 커뮤니케이션이다. 하지만 스냅은 매년 적자만 쌓여가고 있다. 오히려 ‘스토리’ 같이 스냅챗의 아이디어를 적극 벤치마킹한 페이스북만 해당 아이템으로 수익화에 성공하고 있다.
현재 Z세대가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젠리 서비스 내에 당장 수익화를 할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스냅의 아이디어는 늘 Z세대에게 먹혔다. 젠리는 2011년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서비스고, 2017년 스냅에 약 3,000억원에 인수됐다. 2011년, 2017년에도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젠리가 2019년이 되어 Z세대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 상승세를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최근 스냅은 한국 내 사용자 확대를 위해 10-20대 청소년을 주 소비자로 두는 몇몇 국내 기업에 젠리 관련 협업을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Z세대의 커뮤니케이션 트렌드를 제안하기만 했던 스냅이 점점 엄격해지는 개인정고 관련 규제를 넘어 수익화에 ‘드디어’ 성공할 수 있을까?
*혹시 젠리를 써보고 싶다고 다짜고짜 연락처에 있는 조카, 자녀, 제자를 친구 추가해 10대들의 커뮤니케이션 생태계를 깨지 않았으면 한다. 굳이 젠리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이 글의 필자를 젠리로 추가해서 체험하도록 하자 👉https://zen.ly/IsaacYun
1 comment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서비스는 sns와 커뮤니티, 감시앱등 여러 분야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