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이 쌓아 올린 3.5차 산업 혁명 카페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초저가 아메리카노’를 내세우는 테이크 아웃 커피점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대다수의 저가 테이크 아웃 커피점이 소규모 점포의 낮은 임대료와 키오스크를 활용한 인건비 절감을 바탕으로 박리다매를 실현해 내고 있다면, 유독 특이한 전략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커피 전문점이 있다. 바로 바나프레소.
바나프레소에서 판매하는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가 1,500원이라는 점에서 언뜻 보면 다른 저가 테이크 아웃 커피점과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하나하나 훑어보면 바나프레소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매장 내의 모든 반복 작업은 IT 기술로 자동화
달라도 한참 다른 바나프레소의 서비스를 체험하기 위해 우선 주문을 해보자. 바나프레소에서의 메뉴 주문은 키오스크와 앱으로만 가능하다. 사실 주문 접수를 효율화 하기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한 패스트푸드점과 커피 프랜차이즈는 많다. 하지만 효율을 위해 도입된 키오스크 주문 시스템들이 디지털 기기가 익숙하지 않은 노인에게 뿐 아니라 디지털 리터리시가 높은 젊은층이 이용하기에도 불편한 점이 많다. 그에 반해 바나프레소의 키오스크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과 같이 인기 제품과 이미 선택한 제품의 연관 제품을 추천 노출하는 인터페이스는 유려하고, 결제 흐름에 단 하나의 허들도 없었다. 심지어 결제와 주문 접수 이후 부드럽게 멤버십 가입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커피 주문이 간편하다’는 기분을 넘어 ‘완벽하게 잘 설계된 앱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주문을 마치고 커피가 제조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충격을 받게 된다. 주문을 확인한 바리스타는 빈 플라스틱 컵에 빠르게 얼음을 채우고 커피 기계의 버튼을 한 번 누른다. 그리고 원터치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나오는 커피를 받아낸다. 아메리카노 주문이 들어왔을 때 바리스타의 업무는 그것이 끝이다. 키오스크 주문부터 커피 수령까지 40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원터치 에스프레소 기계로 아메리카노를 제조한다는 점에서 한 번 충격 받고, 결제에서 수령까지 40초가 채 걸리지 않는 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충격을 받는다.
사실 이 부분에서 “바나프레소를 카페라는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 생긴다. 원터치 에스프레소 기기의 추출 완성도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고 우선 넘어가도록 하자. “1,500원 짜리 아메리카노에 뭘 바라냐”는 ‘가성비 국밥충’으로서의 평가 회피 보다, 균일한 퀄리티의 커피를 제조할 수 있는 과도기적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나프레소의 아메리카노가 나쁘지 않았고, 저가 커피 기준으로는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원터치 아메리카노 제조 과정을 보고 맛을 본지라 기대치가 적어서일 수도 있다.)
바나프레소가 주문과 제조 단계를 완전히 다른 발상으로 접근을 했는데, 매장 내에 메뉴 정보를 제공하는 DID(Digital Information Display,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 역시 다른 프랜차이즈의 것과 차원이 다르다. 대부분 프랜차이즈의 DID는 메뉴와 광고가 단순 순차 재생/송출되는 플레이어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개발돼 서버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바나프레소의 DID는 단순히 시즌 메뉴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매장 내 재고 현황을 바탕으로 메뉴 품절 여부까지 보여준다. 특히 시시각각 다른 샌드위치류의 재고 여부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나프레소는 주문(키오스크/앱), 제조(원터치 에스프레소 기기), 재고관리(관리 및 품절안내) 등 카페의 모든 반복 작업을 자동화한 것이다. 이런 IT 기술의 적용과 많은 부분에서 구현된 자동화로 바나프레소 점포 내 직원 수는 같은 규모의 다른 카페 보다 훨씬 적다.
출점은 최대한 가까이… 강남역 주변 600m에 11개
바나프레소의 출점 형태를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자주 사용하는 지도 앱을 열어 ‘바나프레소’를 검색해보자. 전체 47개 점포 중에 무려 35개의 점포가 강남구와 서초구에 위치해 있고, 모든 지점의 200m 내에 다른 바나프레소 지점이 있다. 몇 안되는 비강남권 점포들도 고작 한 두블럭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고, 심지어 강남역과 역삼역 반경 600m 내에는 11개의 바나프레소 지점이 몰려있다. 강남에 밀집해 있기로 유명한 스타벅스보다도 더 높은 밀도로 점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업종의 경쟁 점포가 가까이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특히 같은 브랜드의 프랜차이즈를 근거리에 두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상식을 벗어나는 전략이다. 이는 바나프레소의 참신한 전략에서 나온 특이한 출점 형태다. 바나프레소는 삼성동 바나에프엔비 본사 사옥 내에서 빵류를 상당수 제조하고 있는데, 큰 공간을 차지하는 제빵 시설을 점포에 두는 것이 아니라 거점에서 일괄 생산해 배포하는 형태의 효율적인 콜드체인을 구성한 것이다. 쿠팡과 마켓컬리가 수도권 전역, 전국을 대상으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콜드체인을 독특한 카페 비즈니스 형태로 구현한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 보았던 지도 앱을 다시 한 번 열어보자. 상당수의 바나프레소 점포가 대로변 혹은 임대료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모든 점포에 좌석이 넘친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으로 들고 나가도 1,500원, 점포 좌석에 앉아 몇시간 동안 천천히 마셔도 1,500원이고, 심지어 노트북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전기코드 좌석도 많다.
흔하디 흔한 카페에 IT 기술이 적용됐을 때, 물류 그리고 주문-제조-제공 과정을 단순 점포 운영이 아닌 IT 서비스 흐름으로 해석했을 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바로 바나프레소에서 구현된 것이다.
극강효율 카페 이전에 노동집약 대리운전이 있었다
철처히 오프라인형 상품인 ‘카페’를 IT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나에프엔비의 모 회사가 독보적인 1위 대리운전 소프트웨어 업체 바나플(구 로지소프트)이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대리운전 소프트웨어를 제작 운영해온 바나플은 모빌리티 관련 소프트웨어로 매년 150억 원 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영업이익만 수십 억씩 기록하고 있다. 사실 바나플은 높은 수수료율과 과금을 유도하는 대리운전 서비스 운영 정책으로 인해 대리 기사들의 높은 원망과 비판을 사고 있다. 대리 기사용 앱을 분할해 3배 이상의 결제를 유도하거나, 경쟁사 앱을 사용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등의 행위로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
노동 집약적 산업인 대리운전에 IT 기술을 접목한 ‘3.5차산업혁명’적 비즈니스로 큰 돈을 벌어들인 것이 바로 바나플이다. 바나프레소가 오프라인 F&B 점포 운영에 IT 기술을 노련하게 접목한 것, 그리고 다른 F&B 업체와 비교되는 콜드체인을 운영하는 것 모두 모 회사가 운영하던 대리운전 소프트웨어에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행해진 의사결정일 것이다. 전혀 연관성 없어보이는 대리운전과 카페가 알고보면 같은 고민에서 나온 결과인 셈.
O2O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란 무엇일까, 4차 산업 혁명이란 무엇일까. 바나프레소와 바나플을 배우고 싶기도, 반면교사 삼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