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201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려움은 인과적 추론을 부른다. 기원이 중요해진다. 알 수 없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조커의 존재가 그랬다. DC의 세계관 안에서 조커라는 캐릭터는 알 수 없는 거대한 혼돈 그 자체다. 명확히 해석될 수 없기에 더 두려운 존재. 그저 계속해서 던져지는 배트맨의 영원한 안티태제. 토드 필립스가 만든 <조커>의 새로움이라면, 이 영화가 조커의 탄생을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의 뚜렷한 궁금증을 가지고 혼돈 그 자체인 사내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내면에 ‘접근’한다. 한때는 웃음이 전부였던 광대는 어떻게 조커가 되었는가. 그리고 바로 그 접근 방식 때문에 이 영화는 근사한 캐릭터 무비가 되기도 하고,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매장이나 아동 병원 등에서 광대로 일하는 아서는 코미디언을 꿈꾼다. 하지만 망상과 분열증으로 고통받는 그의 코미디에는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다. 반사회적 성격을 지닌 가난한 아서의 존재는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세상은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그에게 폭력적이다. 저녁 시간, 유명 코미디언이자 진행자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의 TV쇼를 보는 게 그의 유일한 낙이다.
영화의 중반까지만 해도 아서는 세상이 원하는 질서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맞추려 한다. 자신에게는 정신 질환이 있고,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에는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없음을 필사적으로 알린다. 사람들과 통하지도 않는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내 외톨이였던 그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상황은 달라진다. 아서의 살인을 두고 그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이 결합하면서부터다.
고담시는 이미 심각한 빈부 격차에 시달리고 있고, 가난한 자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자들의 언행은 대중의 분노를 들끓게 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본가를 처단한 ‘마스크 광대’에 열광하며 자발적으로 시위대를 꾸린다. 아서의 행동에는 분명한 목적성이 없었지만, 이 의도 없는 결과로서 아서는 사회적 촉매제가 된다. 아서는 연일 충격을 토해내는 언론과 대중의 반응을 점차 자신을 향한 관심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끝내 “서로에 대한 배려 없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 역시 예의를 포기하기로 한다.
일련의 상황 끝에 머레이 쇼에 출연한 아서와 머레이의 대화는 중요하다. 아서의 코미디를 조롱했던 머레이는 뜻하지 않게 시청자 반응이 올라가자 그를 초대하고, 여기에서 아서는 자신이 ‘마스크 광대’임을 밝힌다. 머레이는 부자를 향한 범죄를 정당화하고 대중을 동조한 책임을 묻는다. 그때 아서는 조롱하듯 이렇게 되묻는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코미디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사람이 부패한 세상의 반(反)영웅이 되는 역설. <조커>는 그렇게 역설의 드라마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조커를 향한 이러한 영화의 해석은 매혹적인 동시에 위험하다. 영화는 물리적 법칙을 가뿐히 무너뜨리며 현실의 배경을 지워버리는 여타 히어로물과 대척점에 서있다. 배경은 분명 1980년대 고담시라는 가상의 시공간이다. 다만 수퍼히어로물의 장르적 성격 대신 사회 고발 드라마를 의도한 이 영화의 톤 앤 매너는 영화 밖 관객의 현실과 강력하게 링크한다. 캐릭터 또한 의도한 혼란 안에 있다. 아서는 주동자가 되고자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자신을 조커로 불러낸 세상의 반응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관객의 판단이 갈린다. 조커의 행위는 단지 장르영화의 장치인가, 윤리의 영역에서 논의될 폭력의 문제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커의 서사가 일단 관객을 매혹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힘의 대부분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서 나온다. 그는 세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침투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연기해낸다. 처음부터 광기의 악당이 아니라 참혹한 세상의 규칙에 꾸역꾸역 자신을 맞추려던 자. 삶의 무게가 매달린 발을 질질 끌며 살아가야 했던 자가 폭주하는 드라마를 납득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야 만다. 아서의 심리 드라마라고 불러도 좋을 이 영화에서 피닉스의 존재는 그만큼 절대적이다.
모든 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건 마지막 시퀀스다. 아서는 정신병원에 갇힌 상태다. <조커>는 의도적으로 망상에 시달리는 아서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줬다. 즉 영화는 지금껏 펼쳐진 이야기가 아서의 현실이 아닌, 그의 입장에서 서술된 망상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아서의 망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소 뜬금없는 점프숏이나 구멍이 난 일부 전개 역시 수용 가능한 것이 된다. 망상이라는 개인적 세계에서까지 아서가 윤리적일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역시 분명하게 의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커>는 끝까지 논쟁적인 영화가 된다.

<조커>는 분명 문제적 태도를 취한 영화다. 이 방식이 윤리적으로 옳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향한 흥미로운 해석 하나를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애초에 이 영화 한편으로 조커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우리의 오만에 불과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조커라는 존재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거대한 혼돈 그 자체였으므로.

<조커>(2019)
Joker
감독
 토드 필립스
주연 호아킨 피닉스, 재지 비츠, 로버트 드 니로, 프란시스 콘로이
시놉시스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 하지만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는 그가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짜 ‘조커’를 만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