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고 싶은 마음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할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자주 생각하곤 했다. 살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돌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여다보려고 하면 마음은 마치 오랫동안 여닫아서 삐걱대는 고장 난 문 같았고, 무거운 추에 꽁꽁 묶여 강물 바닥으로 가라앉는 상자 같았다. 그러면 나는 잠자리의 뜯어진 날개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허망해지거나, 장작불의 마지막 불씨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끝 모를 기분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거울을 보는 일로 많이 비유하곤 하는데, 나는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잘 모르겠다는 기분만 들었다. 거울 속엔 ‘내가 보는’ 나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살아갈수록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알 수 없는 수많은 겹이 생긴다. 그래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점점 더 알기 어려워진다. 슬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화가 난 것이었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때가 많았다. 늦게라도 알게 되면 다행이지만 모르고 지나가는 때가 더 많기도 했다. 잘 알아야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음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 그런 마음은 어떻게 해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선명해질까. 생각해본다. 내가 걸쳐 입고 있던 수많은 감정의 외투를 벗어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아무도 없고 오롯이 혼자 서 있는 순간이라면 어떨까. 그때 나는, 내 마음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람이 되기도 할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를 보았다. 이 전시는 강원도 영월의 창령사 절터(고려 때 세워져 조선 중기 때 폐사된 것으로 보이는)에서 2001년에 발굴된 오백나한을 설치 작가 김승영의 참여로 현대적으로 새롭게 구성하여 선보인 전시다. 나한은 불가의 진리를 깨우친 자, 오랜 수련과 정진으로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성자를 일컫는다고 하는데. 전시에서 본 나한의 얼굴들은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얼굴이었다.
설치 작가 김승영은 나한들을 하나의 나무로, 그리하여 전시장을 하나의 숲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마음을 놓고 마주할 수 있는 수십 그루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 내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바로 그 숲에 있었다. 그것 자체로도 깊고 평온했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오롯이 서 있는 나한과 마주하고 있으면 지금 여기에 나한과 나 둘만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한의 표정은 편안했고, 아무런 복잡함이 없는 천진한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조금씩 다른 생김새를 가진 나한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는 일은 내 마음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주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아무것도 없으나 아주 많은 것이 들어 있는 얼굴. 다 알고 있는 평온한 얼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나 전부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얼굴. 그 얼굴이 내게 다 괜찮을 거라고, 내가 너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1부 전시장을 다 돌아보고 나는 문득 뒤를 돌아 나한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돌 속에 숨겨진 얼굴이었다.
다른 전시장에선 수많은 스피커 사이에 놓여 있는 나한들을 볼 수 있었다. 스피커에선 도심의 소음이 흘러나왔다. 어떤 나한은 얼굴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 채로, 가득하면 가득한 채로 가만히 깨닫고 있는 얼굴. 그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얼굴, 내가 발견하고 싶었던 얼굴, 거울을 볼 땐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얼굴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 자유로움, 천천히의 속도를 가진 마음. 그 얼굴을 경험한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주는 얼굴. 내가 가닿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전시의 부제인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처럼, 내가 모르던 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돌 바깥으로 나온 얼굴들. 오랫동안 알고 싶고, 얻고자 했던 그 맑고 천진한 자유로움. 내가 그토록 원했던 마음들이 거기 그대로 놓여 있었다.
기간 2019. 4. 29 ~ 2019. 6. 16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강원도 영월 창령사蒼嶺寺 터 오백나한五百羅漢은 오래전에 폐사된 절터에서 2001년에 발굴되었지만 관람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존재입니다. 마주하는 순간 그 질박하고 친근한 표정이 우리 마음을 두드립니다.
이번 특별전시는 창령사 터 오백나한이 그 주인공입니다. 불가의 진리를 깨우친 성자 ‘나한’이 일상 속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합니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투박한 매력으로 많은 관람객들과 전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국립춘천박물관의 2018년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의 서울전시입니다. 이 전시는 도심 속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나한을 닮은 당신이야말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https://www.museu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