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2018)

카투니스트로서의 존 캘러한을 그렇게까지 좋아해 본 적은 없다. 그가 구사하는 농담의 수위가 내 기준으론 언제나 지나치게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남들의 눈치를 보는 대신 자기 성격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과 이견을 나누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다수자들은 은연 중에 소수자들이 고분고분하기를 바라곤 한다. 상대를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 동정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기에, 동정하기 편하게 착하고 순하고 조용하며 조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요란하게 퍼레이드를 할 게 아니라 조용히 사회가 받아들여 주기를 읍소해야 하고, 장애인들은 버스 앞이나 지하철 선로를 점거해서 불편을 야기할 게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자선을 베풀기를 기다려줘야 하며, 한국에 노동 이주를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을 향한 불평이나 불만을 표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캘러한은 달랐다. 자신의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유머와 독설을 카툰을 통해 맹렬하게 토해냈고, 그 점에 대해 애써 변명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돈 워리>(2018)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캘러한이 그렇게 카투니스트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를 그가 지닌 장애가 아니라 그 자체로 대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캘러한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건 전신마비보다는 알코올중독 탓이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고, 자신의 뒤틀린 유머가 자신의 장애 ‘때문에’ 양해되는 건 극구 사양했던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도니(조나 힐)가 꾸리는 알코올중독자 치유모임은 캘러한(호아킨 피닉스)이 어렸을 적 생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었다는 이유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것은 자기 연민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술을 마실 만한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상대를 나와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 캘러한과 마주치는 비장애인들은 캘러한의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도움을 주지만, 그 필요한 도움이 끝나는 자리에서부터는 그의 불 같은 성미와 뒤틀린 유머, 알코올에 의존하는 성향에 대해 서슴없이 비판한다. 장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지닌 ‘사람’을 봤으니까. 협조가 필요한 자리까지 기꺼이 연대하되 상대를 동정하지 않는 것이다.

장르와 그 온도가 사뭇 다른 작품이지만, <돈 워리>를 보면서 <어른이 되면>(2018)을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장혜영 감독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13살이 되던 해에 장애인 수용시설에 보내져 가족과 떨어져 살던 한 살 터울의 동생 혜정씨를 다시 사회로 데려오겠다 결심하고, 18년만에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삶을 시작했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았던 혜정씨에게 “수업 중에는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나 “대화 중에 맥락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같은 사회적 약속들은 낯설고, 장혜영 감독은 잠시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삶을 보류한 채 친구들과 ‘탈시설 TF’팀을 만들어 혜정씨의 탈시설 적응을 돕는다. 사회 안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는 사회적인 약속이 통하지 않는 상대이니, 자연스레 소통은 지연되기 일쑤이고 장혜영 감독과 친구들도 지치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쉽게 혜정씨를 포기하지도, 혜정씨를 마냥 다 이해하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사회 안에서 섞여 살아가야겠기에, 이들은 혜정씨에게 깐깐한 음악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의 선을 자꾸만 그어 보이며 규칙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자기한테는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가자며 화를 내고 울던 혜정씨가, 언니 장혜영 감독의 말을 듣고는 금방 납득하는 광경을 보고 촬영 스태프 은경씨는 말했다. “얄미워 죽겠어요.”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기에 모든 걸 다 이해해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기에 모든 걸 다 양해 받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연대가 끝나는 자리에서부터는 자연스레 서운하고 얄미운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 그걸 우린 보통 ‘대등한 관계’라고 부른다. 존 캘러한이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기억되는 대신 뒤틀리고 공격적인 유머로 논란을 자주 빚었던 카투니스트로 기억되었고, 혜정씨가 발달장애인으로 뭉뚱그려지는 대신 흥이 많아 춤추는 걸 좋아하고 커피믹스와 스티커 사진에 열광하는 사람으로 우리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건, 두 영화 모두 상대를 상대의 장애가 아닌 상대로 바라보고 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되면>(2018)
감독
 장혜영
주연 장혜정, 장혜영
시놉시스
18년 만에 나보다 한 살 어린 막내동생과 함께 살기로 했다. 동생 혜정은 13살 때 가족들과 떨어져 외딴 산꼭대기의 건물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아왔다. 내 삶에서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이동생의 삶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모든 것이 갑자기 내 결심에 맞게 변하지는 않는다. 혜정이와 함께 살아가려면 내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힘든 순간들이 찾아온다.
우린 결국 떨어져 살아야 할 운명일까? 우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