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스페리아>(1977)와 <경성학교>(2015), 그리고 <서스페리아>(201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2018)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1977년판 원작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한다. 수지(다코타 존슨)는 어떤 사람이고 왜 춤을 추고 싶어하는지, 마르코스 무용학원 내부의 미묘한 파벌싸움은 어떤 맥락 위에 있으며 수지를 보는 마담 블랑(틸다 스윈턴)의 심리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암시한다. 원작이 훌륭하게 성취한 영역은 피해가면서 원작이 공백으로 남겨둔 부분만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구아다니노의 접근은 때론 거의 의도적으로 보인다. 원작의 큰 반전을 첫 장면부터 터뜨리고 가는 대담함을 보라. 이는 원작이 가지 않았던 나머지 가능성들만 죽어라 탐구하겠다는 선언이다.

2018년판이 내린 선택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배경이다. 배경을 최대한 흐릿하게 만들어 잔혹동화의 서사구조를 강조한 아르젠토의 원작과 달리, 구아다니노는 원작이 세상에 공개된 1977년을 배경으로 잡아두고는 그 시절 베를린의 공기를 집요하게 서사 구조 안으로 끌어당긴다. 나치에 대한 죄책감과 그에 동조했던 과거를 심중에 숨긴 이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고, TV와 라디오 뉴스에서는 연일 적군파 테러리스트들과 경찰의 대치 상황이 보도된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빠르게 경제적 재건을 이뤄 평화로워 보였던 표면이 깨지자, 그 아래 도사리고 있던 과거의 죄악과 현재의 모순이 서베를린의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평범한 무용학원인 줄 알았던 곳이 알고 보니 마녀들의 소굴이었던 것처럼, 원작이 개봉하던 시기의 베를린이 바로 그랬노라고 2018년판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판은 1977년판을 빚어낸 시대의 무의식이 무엇이었는지 탐구하는 구아다니노의 코멘터리 같기도 하다.

물론 아르젠토가 그런 시대 분위기까지 염두에 두고 <서스페리아>를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각본을 쓴 다리아 니콜로디는 자신의 할머니가 겪었다는 – 어릴 적 다녔던 기숙학교가 알고 보니 흑마술을 가르치는 곳이란 사실을 알고 도망쳤다는 믿기 힘든 – 경험담을 뼈대로 <서스페리아>를 써내려갔고, 아르젠토는 언제나처럼 서사보다는 신경질적인 미장센과 끝내 주는 살인장면을 만드는데 바빴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때로 예술작품은 작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해석되고 더 확장된 의미를 획득하기도 한다. 작가의 무의식이든, 관객의 집단 무의식이든, 원작은 끊임없이 1977년 당대의 정치적 공기를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춤 선생으로 위장한 마녀들과 성실한 서독 관료의 탈을 쓴 전직 나치 관료들. 그런 서독을 뒤집어 엎고 싶었던 적군파들과, 마녀들의 소굴을 부수고 나온 수지(제시카 하퍼)는 불온하게 공명한다. (2018년판에서 적군파 활동을 하고 있던 패트리샤(클로이 모레츠)가 마녀들의 소굴을 고발하고 뒤집어 엎으려다가 실패했다는 점은 이 희미한 공명을 더 증폭시킨다.)

이런 기묘한 공명현상은 이해영의 세 번째 상업 장편영화 <경성학교>에서도 일어났다. 식민지 조선의 병들고 아픈 소녀들이 정체불명의 약을 먹고 수상스레 건강해지는 기괴한 기숙학교를 그린 이 작품에서, 주란(박보영)과 연덕(박소담)을 비롯한 소녀들은 자꾸만 물에 빠진다. 현실에선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던 주란과 연덕이 물에 빠지고, 주란이 보는 환영 속에서는 주란이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 호수에 빠진다. 그 환영 속에서, 실종된 여학생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대목, 그 여학생들은 일제가 만든 실험실 속 수조 안에 잠겨 있다. 거짓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던 학교를 부순 주란은 연덕의 시신 옆에서 숨을 거둔다.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던 소녀들은 끝내 바다에 가지 못하고 수조로 가득한 일제의 실험실에서 숨을 거뒀다.

가장 건강해진 학생 둘을 도쿄로 유학 보내주겠다는 거짓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학생들이 국가의 필요에 의해 생체실험 대상이 되었다가 물에 잠겨 죽고 실종 처리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2015년 6월에 개봉했다. 이해영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이도 없었고 이해영 또한 그런 언급을 한 적은 없으나, 적지 않은 평자들은 이 영화에서 14개월 전 시작된[*] 참사를 떠올렸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지시를 줄 것이라는 거짓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학생들이 물에 잠겨 숨을 거두고, 가진 모든 자원을 투입해 구조활동에 나서겠다는 국가의 거짓약속을 믿었던 이들이 국가 폭력 앞에서 모욕 당하고, 바다 건너 제주로 가려고 했던 학생들이 끝내 제주에 가지 못했던 어떤 참사를.

“난 죄가 없어요! 난 기억해요! 난 죄가 없어요! 베를린에 죄인이 있냐고요? 사방에 있어요! 하지만 난 아니에요!” 2018년판 <서스페리아>에서, 제의의 목격자이자 희생제물로 끌려온 홀로코스트를 목격했던 노인 클렘퍼러 박사(러츠 에버스도르프, 혹은 틸다 스윈튼)는 울부짖는다. 죄인들이 뻔뻔하게 대낮의 베를린을 활보하는 시대에, 아내를 잃은 고통으로 고뇌하던 자신이 뜬금없이 제단 위에 올려진 것이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패트리샤는, 사라(미아 고스)는, 식민지 조선의 기숙학교에서 도쿄에 유학 갈 그 날을 꿈꾸던 여학생들은, 제주를 향해 가던 학생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죽어갔단 말인가. 죽음은 죄의 유무와 무관하게 닥쳐오고, 죄 지었으나 살아남은 이들은 그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갈 뿐이다. 조금이라도 그 죄 없는 죽음과 닮은 구석이 있는 텍스트를 볼 때마다 머릿속으로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면서.

[*] ‘14개월 전 시작된 참사’라는 표현에 대하여 – 나는 이 글에서 ‘벌어진’이나 ‘일어난’이란 표현 대신 ‘시작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저 두 표현은 이미 마무리된 사안을 과거형으로 이야기할 때에나 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끊임없이 관련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이들과 벌이는 진실의 싸움, 단순한 해상 교통사고였노라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이들과 벌이는 기억의 싸움, 거짓 루머와 모욕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욕보이려 드는 이들과 벌이는 존엄의 싸움은 2019년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2015)
감독
 이해영
주연 박보영, 엄지원, 박소담
시놉시스
외부와 단절된 경성의 한 기숙학교. 어느 날부터, 학생들이 하나 둘 이상 증세를 보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주란(박보영)은 사라진 소녀들을 목격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교장(엄지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수학생 선발에만 힘쓸 뿐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의문을 품은 주란, 하지만 곧 주란에게도 사라진 소녀들과 동일한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1938년 기록조차 될 수 없었던 미스터리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