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2017)

관객이 해피엔딩을 의심치 않던 순간, 스파이크 리의 영화 <블랙클랜스맨>(2018)은 관객의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론(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KKK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부를 끝장냈지만, 여전히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기면 일단 권총을 꺼내 들고 대비해야 하는 위험한 세상을 산다. 창 밖에선 십자가가 불타오르고, 복면을 쓴 KKK 단원들의 외침이 들려오니까. “피와 땅! 피와 땅!” 소리를 따라 화면은 2017년 8월의 샬롯츠빌 기록영상으로 넘어온다.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그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의 얼굴 위로 익숙한 목소리가 깔린다. “한쪽은 아주 사악했으며, 마찬가지로 다른 쪽도 아주 잔인했습니다.” 미국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양비론을 들며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변호하는 동안, 화면은 ‘이제 미국을 되찾을 때’라고 외치는 데이비드 듀크의 연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날 가장 충격적이었던 순간이 화면을 뒤덮는다. 백인우월주의와 맞서 싸우자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민들의 무리를 향해, 회색 닷지 챌린저 차량이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사람들이 무참하게 튕겨져 나가고, 닷지 챌린저는 다시 전속력으로 후진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치고는 도망친다. 백인우월주의자의 차량 테러에 숨을 거둔 그 날의 희생자는, 역설적이게도 백인 여성이었다. 그 날 다른 시민들과 연대해 시위를 벌이다가 세상을 떠난 헤더 하이어의 사진으로 문을 닫는 <블랙클랜스맨>은 관객에게 질문한다. 이게 정말 70년대 초반에 론이 거둔 잠깐의 승리와 함께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블랙클랜스맨>은 엔딩 크레딧이 끝나는 순간 우리 안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와 비슷한 불안과 좌절을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2017)의 말미에서도 느낀 적이 있다. 일평생 아버지가 언론사를 경영하는 걸 보고 자랐음에도,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여자라는 이유로 회사를 직접 상속받지 못한다. 회사를 물려받은 남편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뒤 캐서린은 경영의 전면에 나서지만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자신이 직접 영입한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자꾸 ‘언론의 의무’에 대해 강의하려 들고, 이사회의 멤버 아서 파슨스(브래들리 윗포드)는 회사를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가르치려 든다. “오해 말고 들어요. 여성 발행인이라 구매자들이 망설이는 겁니다.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캐서린은 사교계에선 훌륭하지만, 그녀 아버지도 사위에게 회사를 물려줬잖소. 남편이 죽는 바람에 그녀가 사주가 된 거고.”

그러나 회사의 명운이 달린 기사를 보도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 캐서린은 온전히 자신의 판단으로 보도를 결정한다. 닉슨 행정부가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던 베트남전의 진실을 보도하느냐 마느냐로 격론을 벌이는 기자들과 중역들 사이에서,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야말로 <워싱턴 포스트>의 사명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벤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워싱턴 포스트>를 걸고 용감한 결정을 내린 캐서린에게 뒤늦게 경의를 표하고, 캐서린은 ‘회사의 전통’을 운운하며 훈계하려 드는 아서에게 결정권자는 자신이라는 걸 확실히 해둔다. 법무부가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를 상대로 신청한 추가 보도 금지 명령의 적법성을 따지는 연방 대법원 심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시위대 속 여성들 모두가 캐서린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여성을 무시하는 백인 남성들의 폐쇄적인 카르텔은 깨졌고, 국민으로부터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의 협잡 또한 만천하에 드러났다. 달콤한 승리감에 취할 법도 하지만,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불안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캐서린 그레이엄과 <워싱턴 포스트>가 거둔 성취는 눈부시지만 여전히 정부는 언론을 공격하고 남성들은 여성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피해사실을 폭로한 여성들은 ‘가짜 미투’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CNN과 <뉴욕 타임즈> 같은 언론사들이 대통령으로부터 ‘가짜 뉴스’라는 공격을 당한다. 1971년의 승리에서, 미국은 과연 몇 발자국이나 앞으로 나아간 걸까?

백인이 흑인을, 행정부가 언론을, 극우인종주의가 평화와 공존을, 남성이 여성을 공격하는 양상. 이 모든 걸 관통하는 키워드는 ‘힘’일 것이다. 힘 있는 자들이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이들을 억압하고, 열등한 존재이기에 열등한 취급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설파하고, 발언을 못 하게 입을 틀어막는다. 우리가 만든 세상은,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따위의 쉬운 해피엔딩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온 우리는 이겼다는 즐거움 대신 묵직한 바톤을 전달받는다.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가 이어 달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바톤을.

이게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그럴 리가.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대림동 중국교포 타운을 범죄 소굴 취급하고, 예멘 난민들이 한국인들을 강간하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퍼뜨릴 것이라는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한국판 데이비드 듀크들이 가득한 세상 아닌가. 남자 연예인들이 불법 촬영한 여성들의 성관계 동영상을 단톡방에서 돌려보고, 여성들에게 최음제를 강제로 먹이고 특수강간을 저지른 검사가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는 나라 아닌가. 태평양 너머 먼 나라에서 40여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지금의 우리 몰골이 너무도 처참하다. 그러니 별 도리 없이 받아서 달릴 수밖에 없다. 스파이크 리가, 스필버그가 우리에게 넘겨준 바톤을.

<더 포스트>(2017)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시놉시스
1971년,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로 미 전역이 발칵 뒤집힌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알려지자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고, 경쟁지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벤’(톰 행크스)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입수에 사활을 건다. 결국 4천 장에 달하는 정부기밀문서를 손에 쥔 ‘벤’(톰 행크스)은 미 정부가 개입하여 베트남 전쟁을 조작한 사건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회사와 자신, 모든 것을 걸고 세상을 바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1분 1초의 사활을 건 특종 경쟁 속, 세상을 뒤흔든 위대한 보도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