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
1991년 출간되어 페미니즘 필독서로 여전히 호평받고 있는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가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성취 이후 준비 없이 맞이한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신보수주의 물결 아래 등장한 ‘반페미니즘’ 정서를 면밀히 해석하고, 이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백래시(backlash, 반격)’는 ‘사회 변화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나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인데, 수전 팔루디는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저지하려는 반동의 메커니즘’에 백래시라는 이름을 붙여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저자가 사례로 든 백래시의 말들을 살펴보자. ’페미니즘은 이제 충분하다’, ‘독립적이고 이기적인 여자들이 출산율을 낮췄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이기적인 엄마들’, ‘직장에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은 남성들을 몰아낸다’, ‘아버지가 만들어 낸 아이의 생명을 지킬 권리’, ‘강박적인 남성 공포증’ 등등. 이처럼 여성의 일, 감정, 신체를 구속하는 언어와 서사, 이미지는 TV, 영화, 뉴스, 광고 등 온갖 미디어와 국가적 슬로건, 심지어는 전문가의 언어를 통해 여기저기 범람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책은 미국 페미니즘 역사의 한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시감이 드는 것은 최근 성폭력 폭로가 계속되면서 #ME_TOO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 사회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2015년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이후 늘어난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과는 달리 온라인을 비롯한 교육방송에서까지 반페미니스트 정서가 득세하는 상황인 한국 사회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 수전 팔루디는 지난 1월 초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여성들에게 환멸을 출발로 삼을 수 있는 지혜를 나눠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성의 권리는 하룻밤 사이에 쟁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싸워왔다. 좋은 소식은 이런 것이다. 여성운동의 걸음걸음에 세상이 아무리 강하게 반격해와도 여성들이 완전하게 밀린 적이 없다는 것. 그때마다 페미니스트의 생각은 더 강하게 뿌리내렸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말이다. 우리는 그저 포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올해, 우리는 더 많이 바꿀 것이다. 지금은 2018년이니까.(유정미)
『백래시』
지은이 수전 팔루디
옮긴이 황성원
감수(해제) 손희정
출간정보 아르테 / 2017-12-15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는 2011년 타계한 고(故) 김근태와 그의 아내 인재근이 주고받은 편지를 담은 책이다.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고(故) 김근태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1985년과 1990년 두 번에 걸쳐 5년에 가까운 투옥 생활을 했고, 그의 아내인 인재근은 그 기간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시에 남편의 옥바라지까지 했다. 두 사람은 연애 중이던 78년부터 두 번째 투옥 생활을 했던 91년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편지에는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투쟁의 삶을 살았던 활동가로서의 신념뿐만 아니라 강제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부부로서의 내밀하고 진솔한 감정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그동안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졌던 이들의 이야기와는 온도와 질감이 다른, 지극히 사소하고 생활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더욱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의 편지는 두 사람의 딸로 태어난 김병민이 엮었다. 미술사 강의를 하며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기도 한 그녀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고심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 중이다. 그녀는 최근에 이 책을 출간하면서 <채널예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투사, 고문 피해자로만 알려진 김근태의 다른 면이 알려지길 바랐다고 말한다. “이 책은 남영동에서 나온 이후 감옥에서의 편지들이잖아요. 저는 그 사건보다 김근태라는 사람이 그 이후에 어땠는지 좀 더 알려지길 바라요. 얼마나 본인을 치유하려고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고, 가족들이 거기에 어떻게 힘을 더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남영동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린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박종철 열사의 이야기를 알게 될수록 아빠의 남영동 이후의 삶이 기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주성)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
편집자 김병민
출간정보 알마 / 2017-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