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장이라니. 원고 청탁을 받고 ‘나의 책장’을 휘- 둘러보았다. 이미 책장에는 새 책을 꽂을 자리가 없다. 책장이 있는 방―차마 서재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부를 수 없으니까―에는 방바닥 여기저기 책들이 흩어져 있다. 이 중에 한 권, 무슨 책을 소개할지 꽤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장자 우대’라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에 기대어 답을 찾았다. 책장에서 가장 오래된 책 이야기를 하기로.

5년 전, 살림을 따로내면서 책은 본가에 놔두고 몇 권만 챙겨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이라는 놈은 토끼보다 번식력이 왕성해, 이삿짐에서 반드시 줄여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따라온 녀석이 있다. 『나의 작은 새』라는 제목의 낡은 책 한 권. 1999년 문일출판사에서 출간된 초판 1쇄 본이다. (지금 이 책은 절판이지만, 동명의 소설이 새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작은 새는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왔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주인공 남자의 창가에 몸길이 10cm 남짓의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이 ‘어느 날 느닷없이’ 시작되었다는 것. 녀석은 불만스럽게 툴툴 지저귀고, 거드름을 피우고, 원하는 건 당당하게 요구했다. 툭툭 내던지는 말참견도 잊지 않았다. 얹혀 지내는 주제에 무례하기 짝이 없고 맹랑하기가 이를 데 없다. 평범하고 반복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남자에게 찾아온 작은 새는 ‘아주 작은’ 특별함이 되었다. 남자의 삶에 작은 새와의 관계가 배어들었고, 전과는 달라진 일상이 이야기 전체에 그려진다. 물론 작은 새 한 마리가 만든 일상의 변화가 대단치는 않지만 말이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매일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어제와 같은 길을 따라 출근하고 늘 해 오던 일을 하다가 퇴근해서는 또 잠이 든다. 가끔 저녁 약속이 있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새롭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 삶이 나쁘지는 않았다. 장기하가 부르던 노래처럼 별다른 걱정도, 이렇다 할 고민도 없이 ‘별일 없이 산다’는 것뿐이니까.

마침 근래에 영화도 한 편 보았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 씨의 반복된 일상을 담은 영화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지만 패터슨 씨는 자기만의 시를 쓰면서 평범한 날들 사이에 반짝이는 순간을 만든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했던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묘하게 영화와 책이 맞아떨어진다. 원고를 핑계로 꺼내 든 낡은 책, 그리고 때마침 보게 된 영화가 나에게는 느닷없이 찾아온 작은 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삶에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오늘과 내일, 평범한 하루하루 사이에서 반짝이는 그 무엇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길을 가다가 혹은 지하철 안에서, 밀리는 도로 위에서 정말이지 느닷없이 뭔가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을 놓치지 않고 꼭 붙잡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지혜를 불러 일깨울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작은 새』 옮긴이의 글을 이 자리에 다시 옮기며 글을 마치려 한다. 모두에게 바란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 무엇과의 만남이 저마다 삶을 환기하는 바람이 되길. 정신 사나운 책장 꼴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해 노랫말을 흥얼거리다 영화 감상까지 끄집어내면서 써 내려 간 글이 몹시 어수선해서 걱정스럽지만, 이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마구잡이’로 일관성 있었다고 우겨 본다. 어쩐지 수줍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월이니까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의 작은 새』
지은이 에쿠니 가오리
출판사 소담출판사
출간일 2012-02-14
(윗글에서 소개한 『나의 작은 새』는 1999년 4월, 이영선이 옮기고 문일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된 상태라 소담출판사에서 재출간한 책으로 갈음해 전한다.) 1998년 일본 로보노이시 문학상을 받은 작품 『나의 작은 새』는 잔잔한 일상 속으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작은 새 한 마리와의 ‘사랑 비슷한’ 동거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멋대로에 질투심이 많은 ‘작은 새’, 그런 작은 새의 까다로움을 지나칠 정도로 잘 받아주는 ‘나’, 그리고 요리도 정리정돈도 무엇이든 완벽한 ‘여자친구’, 이 셋은 미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저마다 조금씩 다른 행복의 착지점을 찾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