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선 이뤄질 것 같지 않아 아픈 꿈
이제는 세상에 없는 나의 작은누나는 뼈가 쉽게 부러지는 희소병인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을 앓았다. 일곱 살 무렵까지는 자력으로 걸을 수 있었다는데, 누나와 여섯 살 터울인 나는 누나가 휠체어를 탄 모습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누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 직업교육까지 모든 정규교육을 홈스쿨링으로 마쳐야 했다. (그나마 우리 집이 소득분위로 중상층에 속하는 집이었고, 장애인 교육 지원 자원봉사단체와 연이 닿는 행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나의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대부분 PC통신 장애인 동호회에서 만난 이들이었는데, 휠체어에 불친절한 한국의 보행로와 건물들 탓에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 누나는 스물 한살이 되던 1998년에 세상을 떠났다.
남들과 다르고 약해서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한 이가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 자식이 또 다치지는 않을까 24시간 대기조로 살아야 하는 부모의 마음, 형제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은 부모의 관심에서 늘 후순위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쓸쓸한 형제의 마음. 물론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당사자의 고통만 하겠느냐만, 가족도 사람인 이상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 개인사 탓에, <원더>(2017)를 보는 내 심사는 아주 복잡했다.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와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네이트(오웬 윌슨)과 이자벨(줄리아 로버츠)가 겪었을 상황은 내 유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나는 오래 묵은 상처가 새삼 욱신거리는 통에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가슴을 쓸어 내렸다.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협량해지는 나는 어기가 보낸 1년이 부러웠다. 세상은 험난해서 줄리안(브라이스 게이사르)처럼 어기를 괴롭히는 아이도 있고 피구 시간엔 온통 공을 맞아야 하지만, 그래도 잭 윌(노아 주프)이나 썸머(밀리 데이비스)처럼 어기의 진면모를 알아보고 선뜻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도 있지 않던가. 1년을 버텨낸 끝에 세상 속에 제 자리를 만들어 낸 어기를 보며, 나는 그럴 기회가 없었던 나의 누나를 떠올렸다. 한국은 장애아동이 비장애아동과 함께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드무니까. 장애인 대상 교육시설이 아닌 이상에야, 휠체어 리프트나 엘리베이터, 점자보도와 점자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학교는 그 시절엔 없었고 지금도 드물 것이다. 어기처럼 세상과 부딪혀 상처를 입고 그걸 극복하려 노력해 볼 기회 자체가, 한국의 장애아동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원더> 같은 훌륭한 영화와 짝을 지어주자니 <원더>에게 좀 미안해지는 작품이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범작 <잭>(1996)을 떠올린 건 그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세포 분열 속도가 4배 빠른 탓에 40세 남성의 육체를 가진 10살 소년 잭(로빈 윌리엄스)이 처음으로 학교에 가서 친구를 만들고 사춘기를 경험하는 과정을 다룬 <잭>은 분명 <원더>에 비하면 지나치게 말랑말랑하고 허술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하던 1996년에도, 6학년 꼬마였던 나는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다. 저 나라는 장애아동도 비장애아동들과 함께 수업을 받고 어울릴 수 있나 보다. 누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지 않았을까. <잭>에서 <원더>까지 21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21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올해 9월, 강서구에 설립 예정이던 특수학교와 관련해 소동이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 특수학교를 세우겠노라 예고한 교육청 소유 부지에, 총선을 앞두고 멋대로 국립한방병원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해놓고는 나 몰라라 한 모 국회의원 탓에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학교 설립을 반대하며 “장애인들이 동네에 돌아 다니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장애인 혐오발언을 서슴지 않는 주민들 앞에서, 장애아동 학부모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 광경을 보고도 주민들은 “쇼 하지 말라.”고 외쳤다. 어디였어도 상황은 비슷했으리라. 설마하니 강서구 주민들만 특별히 더 모진 사람들이어서 이럴까. 이런 나라에서, 장애아동이 비장애아동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며 세상으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은 여전히 아픈 꿈이다. 좀처럼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너무 아픈 꿈.
Jack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주연 로빈 윌리암스, 다이안 레인
시놉시스
‘잭’은 임신 10주만에 출생했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잭의 나이는 10살이지만 외모는 마흔살 중년의 모습이다. 놀림감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잭의 부모 ‘카렌’과 ‘브라이언’은 아들을 집안에서만 키우려 하지만 가정교사인 ‘우드러프’는 잭을 학교에 보낼 것을 당부한다.
5학년 수업을 받으러 처음 등교한 날, 잭은 웃지못할 실수를 연발하면서 급우들로부터 놀림감이 된다. 그러나 가지와 위트가 뛰어난 잭은 여러모로 장기를 발휘하면서 급우들과 선생님의 인기를 독차지 한다. 농구 시합 중엔 덩큐슛과 화려한 볼 콘트롤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자 평소 잭을 놀림감의 대상으로 여기던 루아, 애디 등의 급우들도 차츰 잭에게 호의를 느끼고 친해진다. 이제 잭에게 학교 생활은 무궁무진한 즐거움의 공간이다.
그러나 외모가 40대로 보이는 탓에 잭의 일상은 심상치 않은 해프닝에 부닥치기 시작한다. 급우인 루이의 어머니는 레스토랑에서 웨이츄레스로 일하는데 잭을 교장 선생님으로 착각하고 노총각 교장선생님에게 야릇한 성적 호기심을 느낀다. 어른들이 자신을 어른으로 대해주자 우쭐해진 잭은 어느날 담임 선생님인 미스 ‘마르께즈’에게 춤추러 가자고 제의하는 등 당찬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하루는 술집에서 루이의 어머니를 만난 잭은 그녀와 뜨거운 블루스를 추다가 기습적으로 입술을 뺏기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