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의 나
월간 자랑의 멤버가 되기 위한 면접이 치러진 장소는 한남동에 위치한 모모 언니의 집이었다. 나는 월간 자랑의 마지막 멤버로서, 더이상 신입 멤버를 받지 않겠다던 기존 멤버 몇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주 간신히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면접 자리에서 그야말로 자랑을 해야만 했는데 다행히 멤버들은 마음을 열고 내 자랑을 들어주었다. 옛날 일이어도 좋고 사소한 일이어도 좋고 너만의 착각이어도 좋다는, 그러니까 어떤 기준이랄 게 없는 게 기준이라는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더 어렵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준비한 자랑이 모두 끝난 뒤 모모 언니는 내게 “진심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지만 수진은 면접 후의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야누스냐?”고 물으며 반대했다. 그들은 내게 시간을 달라 말했고 나는 면접일로부터 일주일 뒤에 정식 멤버로서 모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면접 준비를 하며 많은 자랑거리들을 메모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첫번째 모임 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즐거웠다. 수진은 “내년부터 끼게 하자”고 말했지만 모모 언니와 승은, 그리고 혁진은 얼굴도 익힐 겸 해서 올해 마지막 모임부터 나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우리는 본격적인 모임을 갖기 전 오전에 모여 모모 언니의 집 이층 페인트칠을 도와주기로 했다.
“일찍 오셨네요?”
“네, 한 시간도 안 걸렸어요.”
가장 먼저 와 있던 승은이 내게 롤러를 건넸다. 승은이 다시 작업을 하려 뒤를 돌았을 때 다른 롤러로 바꾸려고 도구 통에 손을 뻗는 순간 승은이 뒤를 돌아 말했다.
“저는 원래 맨날 늦어서 어제 여기서 잤어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난 뭐부터 해야 하나, 모모 언니는 어디 있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모모 언니가 오래된 나무 계단 밟는 소리를 내며 이층으로 올라왔다. 언니는 내게 욕실 문을 맡으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셀프 페인팅을 몇 번 해본 적이 있었고 때문에 제법 능숙하게 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수진이 다른 멤버와 함께 커피를 들고 등장했다. 우리는 커피를 나눠 받은 뒤 각자 페인트칠에 열중했다. 나는 작업복을 입고 와 활동이 편했던데다 그날따라 컨디션도 좋아 모모 언니가 실수로 지나친 부분까지 캐치해냈으며, 페인트칠을 처음 해보는 수진에 비해 작업 속도가 두 배정도 빨랐다. 다만 세 시간 작업 후 한 시간이나 잠이 들어버린 바람에 민망한 상황이 있었지만“젯소는요?”라며 눈뜨자마자 작업 상황을 확인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었다.
저 기분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내가 이 모임에 들어올 수 있게 도와준 수연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서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뭘요.
수연에게 답장이 왔다. 다시 세 시간 후, 이제 힘들다 싶었는데 수진이 말했다.
“더는 못해, 술 마시자.”
그래,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눈 오는 거리로 나섰다. 십 분쯤 걸어 도착한 곳은 이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한 와인바였다. 오늘은 한남동 이층집들만 다니네, 하는 생각이 들어 그와 관련된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여긴 한남동 같지 않아서 좋아.”
모모 언니의 말에 모두들 골똘히 그 가게가 한남동 같은 게 나은지 한남동 같지 않은 게 나은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약간 머뭇거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대부분 말수가 적은 멤버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일까, 이 가게가 한남동에 있는데 한남동 같지 않아서일까, 원래 난 그런 인간인 걸까. 나는 그만 나 같지 않게 많은 술을 마시고 취해가고 있었다.
자꾸만 눈이 감겼는데 그게 내리는 눈인지 내 눈꺼풀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말하는 걸 들었다.
“걔가 이 동네에서 가게를 한다고?”
“응. 내가 한남동 맛집 쳐서 갔는데 걔가 사장으로 있더라고.”
“광화문에서 카페 한다고 하지 않았나?”
……
……
나는 화장실에서 구토를 한 뒤 그의 가게 이름을 알아내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한남동 맛집을 쳐 넣었으나 술에 취해 손가락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질 않아서 몇 번이나 “힌남동 맛집, 힌남동 문어 스튜, 핫남동 맛집” 등만 반복해서 입력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고 겨우 자리로 돌아왔을 때, “술 잘 마신다고 자랑하지 않았었나?”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했었죠…… 자랑…… 했었죠…… 나는 속으로 생각하다가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잘 운다고 자랑하더니 진짜였군 그래.”
“어쩐지 진심이 느껴지더라고.”
“아주 전형적인 PTSD인데 자가 치료 기간을 넘겼어.”
“울게 두고 우리부터 시작하자.”
월간 자랑의 2017년 마지막 모임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엎드린 채로 울고 있었다. 마음을 놓고 아주 오래 울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 차례가 왔을 때 고개를 들어 겨우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제게는…… 꺼억…… 제가 마음놓고 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