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핑거프린트>는 ‘일상생활의 사물’을 주제로, 매호 사람들의 삶과 경험, 지혜와 추억을 담는 ’사물학잡지’이다. “당신 삶에는 당신만의 지문이 있다.”라는 프랑스어 문장에서 시작된 이 잡지는 매호 특정 사물을 주제로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과 취향을 지닌 이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다각도의 고찰을 통해 사물이 가진 가치를 색다르게 조명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간호인 1호에는 언제 어디서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인 ‘펜’을 주제로, 작가와 장인, 각 분야에서 삶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전문가와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 각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각자에게 잘 맞는 펜을 알아보고 추천하는 챕터인 ‘준비하기’를 지나면 붓을 만드는 문상호 장인과의 인터뷰 ‘법고창신’,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과의 인터뷰 ‘펜글씨를 바탕으로’, 캘리그라퍼 강은교와의 인터뷰 ‘각자의 취향’, 문구 블로그 ‘아이러브펜슬’을 운영하고 있는 개발자 조세익과의 인터뷰 ‘도구로서의 펜’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쓰기’ 챕터에 다다른다. 여러 인터뷰를 살피며 펜에 대한 탐험을 이어가다가 펜의 뚜껑을 닫는 ‘마치기’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에 다다르면 펜이 지닌 가치가 새삼스레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난다. 이 책에서는 특정한 ‘펜’ 한 자루가 기분을 좌우하기도,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기도, 공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도 하는 것을 두고 펜을 ‘마법의 열쇠’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책상 위에 놓인 내가 즐겨 쓰는 펜이 아주 특별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일상생활의 사물을 보다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친숙하고도 밀접하지만 조금 더 사려 깊은 라이프스타일과 철학을 만나보고 싶다면, 평범한 물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싶다면, 앞으로 나올 책들을 기대하는 것도 좋겠다.(유정미)

「FINGERPRINT 핑거프린트 – Vol. 001: PEN」
지은이 핑거프린트 편집부
출간정보 핑거프린트 / 2017-10-23

‘커버링’이란 주류에 부합하기 위해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1963년에 발간한 저서 『스티그마 : 장애의 세계와 사회 적응』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장애인, 노인, 비만인 등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찍혀 있는 ‘낙인’을 두드러져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을 보고 ‘커버링’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켄지 요시노가 ‘커버링’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커버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종, 성별, 장애, 종교,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합의에 도달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커버링’을 강요당한다. 왜 인종적 소수자들이 백인처럼 행동하려고 하는지, 왜 여성들이 직장에서 양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지, 왜 동성애자들이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평등을 저해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커버링’이 민권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공격이며, 오늘날에도 많은 집단이 ‘커버링’을 통해 억압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커버링’을 위협으로 인지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민권 패러다임과 현행법 모두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미국은 평등을 해치는 방식으로 모든 외부자 집단에게 주류 규범으로의 동화를 체계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 집단들은 강압적 커버링에 맞서 공동 전선을 펼쳐야 하며, 순응이 전제되지 평등을 요구해야 한다.” (김주성)

『커버링』
지은이 켄지 요시노
옮긴이 김현경, 한빛나
출간정보 민음사 / 201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