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죄다 이상해.” 코너(루이스 맥두걸)는 몬스터(리암 니슨)가 원망스럽다. 빨리 엄마(펠리시티 존스)를 낫게 해 줄 방도나 말해주면 좋을 텐데, 몬스터는 계속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만 들려준다. 몬스터의 이야기 속에서 용감하고 사랑스러운 왕자는 알고 보니 끔찍한 죄를 저지른 자였고, 약제사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믿음도 버리겠다는 목사의 애원을 차갑게 외면한다. 그럼에도 왕자도 약제사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끝나는, 흔한 해피엔딩이나 쉬운 권선징악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 하지만 그게 뭐냐고 투덜거리는 코너도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다. 몬스터의 말처럼 인간은 복잡한 짐승이어서 어느 한 가지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을. 사실 코너 본인도 복잡하게 엉킨 서로 다른 마음 중 어느 것이 진짜 자기 본심인지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워 하고 있으니까.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맥스(맥스 레코즈) 또한 엄마를 잃을까 겁이 나는 건 매한가지다. 아빠의 자리는 비어 있고, 누나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그나마 곁에 있어주는 엄마(캐서린 키너)도 일 때문에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다. 엄마마저 새로 만난 남자친구(마크 러팔로)와 눈빛을 나누느라 맥스를 바라봐 주지 않던 어느 저녁, 맥스는 늑대 옷을 뒤집어쓰고 심술을 부리다가 그만 엄마를 물어버리고는 멀리멀리 달아나버린다. 이상하게 생긴 야수들이 사는 낯선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애들이나 믿을 법한 거짓말로 야수들을 속인 맥스는 왕의 자리에 오른다. 야수들과 함께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고 뛰어놀고 비명을 지르면 슬픔도 외로움도 죄다 날아갈 줄 알았는데, 삶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린 왕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법 따위는 알지 못하고, 슬픔을 달래 줄 왕을 기다리던 야수들의 얼굴 위로 그늘이 진다.

유년기란 얼마나 빠져 나오기 어려운 늪인가. 어른이 되는 일은 너무 어렵고 외로워 보이는데, 마냥 어린애로 머물고 싶은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너도 이제 철이 들어야지. 성장통으로부터 애써 도망가며, 아이들은 혹 단 한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이 외로워질까 공포에 떤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초반부, 맥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라는 엄마의 청에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준다. 맥스의 이야기 속 뱀파이어는 고층빌딩을 잘못 물었다가 이가 모두 부러져 상심한다. 다른 친구 뱀파이어들은 “그냥 젖니가 빠진 건데 뭘 걱정하느냐”고 묻지만, 부러진 이들이 영구치였다는 말에 “넌 더 이상 뱀파이어로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는 모두 떠난다. 이야기를 지어내며 맥스는 생각한다. 내가 저지르는 실수가 젖니처럼 빠져도 다시 회복될 기회가 있는 실수가 아니라, 영구치처럼 부숴지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여서 모두 내게 손가락질하고 떠나는 건 아닐까? 죄책감과 두려움에 겁에 질린 건 맥스 혼자가 아니다. <몬스터콜>의 후반부, 코너는 자신이 본심을 입에 올리면 그 때문에 엄마가 죽을 지도 모른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 벌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 해 줄 사람이 그의 곁엔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괴물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 외로워지는 것, 복잡하고 모순된 세상에 실수투성이인 채 굴러 떨어지리라는 것은 두렵고 아픈 일이니까. 코너와 맥스는 성장 그 자체보다 더 무섭고 강한 괴물 같은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리라. 모순된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날로 더 많은 이들과 이별하고 조금씩 외로워지는 과정이지만 그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중요한 건 그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니라 그 세상을 용감하게 직시하고 솔직해지는 거라고 말해줄 강한 존재들이. 코너와 맥스는 그렇게 괴물들의 배웅을 받아 유년기의 끝을 지나는데 성공했다. 슬픔도 외로움도 없는 세계는 아니지만, 슬프고 외롭고 실수를 저지르면서도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배워야 하는 어른의 세계에.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
Where The Wild Things Are
감독 스파이크 존즈
주연맥스 레코드, 포레스트 휘태커
시놉시스
고집불통, 미운 아홉 살 맥스는 외롭다. 아빠는 떠났고, 누나는 놀아주지 않는데다 엄마는 늘 바쁘기만 하다. 어느 날 엄마의 새 남자친구 때문에 심통이 난 맥스는,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집을 뛰쳐나간다. 작은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 맥스. 소년은 낯선 미지의 땅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거대한 괴물들의 왕이 된다. 모리스 센닥의 그림동화를 <존 말코비치 되기>의 스파이크 존즈가 영화화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