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당선으로 이성애자가 게이들의 도시 장악을 염려하는데요. 모두를 위한 의원이 되실 겁니까?” 샌프란시스코 시 의원에 당선되던 날 밤, 하비 밀크(숀 펜)는 하나마나한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이 함의하는 바는 다양하다. “당신들의 라이프스타일로 나머지 우리의 건전한 삶을 물들이려는 것 아니냐.”랄지, “게이들은 오로지 자기들 이슈에만 나설 뿐 다른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선 관심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 아니냐.” 같은 의혹과 거부감. 밀크는 당연한 대답을 건넨다. “그러라고 뽑아 주셨죠.” 밀크는 생애 전체를 LGBTQ 인권을 위해 헌신한 운동가였지만, 동시에 LGBTQ 인권운동은 여성 인권과 노인 인권, 소수민족 인권, 노동자 인권 등 세상의 모든 인권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단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폭넓게 연대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반대하는 이들만이 그걸 몰랐다.

한국 최초의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활동 내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위켄즈>(2016) 또한 인권이란 그렇게 쉽게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이들로 가득하다. 주말마다 모여 게이의 눈으로 본 세상과 삶을 노래하는 지보이스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한 참극의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 자본의 폭력이 극에 달한 쌍용자동차 투쟁 현장에, 축복받아 마땅한 결혼식이 인분투척 테러로 얼룩진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결혼식에. 세상의 폭력 앞에 침묵을 강요받은 이들 곁에서 지보이스는 “나도 당신처럼 힘들고 당신처럼 서럽다. 그러니 당신 곁에서 함께 싸우겠다.”는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성애자들 또한 <위켄즈>를 보며 제 일처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우리’와 ‘그들’이 사실 분리될 수 없는 동시대인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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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학생들을 꼬드겨 멸종을 막으려는 거 아닙니까?” “난 이성애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성애자 선생 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러면 나는 어째서 게이가 되었단 말입니까?” 하비 밀크(숀 펜)가 자신을 공격하는 브릭스 캘리포니아 주 의원(데니스 오해어)의 궤변을 맞받아 치는 장면은 숨 막히는 기시감을 안겨준다. 과거의 일이라고 보고 넘기기엔 편견과 혐오가 아직 너무 건재한 탓이다. 2017년에도 미국의 보수주의 학부모 단체는 하비 밀크 데이에 자녀들을 등교시키지 말자고 선동하고, 한국의 군대는 근무가 끝난 후 사적인 공간에서 지휘계통 상에 놓여있지 않은 타 부대 소속 군인과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A대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아니, 어쩌면 상황이 더 나빠진 건지도 모른다. 자신을 “진보주의자”라 지칭하는 이들조차 “그래도 동성애는 안 돼” 같은 이야기를 하며 제 말의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브릭스인 줄도 모르는 브릭스 천지다.

<위켄즈>의 말미, 지보이스의 멤버 남웅은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지보이스는 원래부터 우리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었잖아요. 그 전부터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는 얘기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삶들이 드러나고 볼 수 있으니까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거 같애. 그래서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얘기해야 되는 것 같고 더 노래를 불러야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사람은 안 보이는 건 무시할 수 있어도 뻔히 눈 앞에 있는 건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수많은 호모포비아들이 “자기들끼리 그냥 조용히 살지, 왜 굳이 요란스레 퍼레이드를 하려고 하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인권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에 쳐박아두고 잊고 싶기 때문이다. 광화문의 세월호 천막을 고까워하는 이들, 청와대 가는 길 민주노총 천막을 저주하는 이들,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철거한 이들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으리라. 밀크가 유언으로 세상 모든 옷장 문을 부숴달라는 뜻을 남긴 것은, 남웅이 카메라를 보며 다짐한 것은 그 강요된 침묵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들의 인권이 나의 인권이고, 그들에게 강요된 침묵이 나의 침묵이다. 이제 그 침묵을 끝내고 우리 모두의 노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위켄즈(2016)>
감독 이동하
출연 지보이스
시놉시스
창단 10주년을 맞는 국내 최초의 게이코러스인 ‘G_Voice’. 스무 살의 신입단원부터 중년이 된 창단멤버까지, 각기 다른 환경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의 공통점은 게이라는 것, 그리고 노래를 좋아한다는 점 외에는 없다. 또 하나가 있다면 이들이 주말마다 만나는, 서로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늘 유쾌한 이들의 주말 앞에 1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큰 행사와 함께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온다. 과연 위기의 ‘G_Voice’는 무사히 그리고 언제나처럼 행복하고 유쾌하게 10주년 기념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