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자,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이달의 영화로 <스포트라이트>가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윗을 보고 있었다. 16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가진 70여분간의 기자회견은 성공적이었고, 미국의 진실을 은폐하는 ‘가짜뉴스’ 매체들이 그 사실을 오도하고 있다는 트윗이었다. 그가 가짜뉴스라 지목한 매체들은 뉴욕타임즈, CNN, ABC, CBS, NBC 뉴스였고, 기자회견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이라 언급한 이는 미국의 극우 방송인 러시 림보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정론지와 3대 지상파, 케이블 뉴스 채널의 대표주자와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새삼 한국에서 개봉한 지 딱 1년이 된 작품을 왜 다시 이달의 영화로 꼽았는지 알 것 같았다. 미국의 언론은 지금 역대 최악의 전쟁에 봉착했고, 보스턴 글로브의 기자들처럼 용기 있는 언론인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할 테니 말이다.
문득 201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한겨레> 토요판 송년회 자리에 초대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내 담당 기자는 정수장학회와 MBC 사이의 대선 앞 지분매각 논의에 대해 단독 보도를 하고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해 법정 투쟁을 겪고 있던 최성진 기자였는데, 술에 취한 그는 사람들을 붙잡고 자신의 셈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내가 헤아려봤는데요, 승한씨. 난 문재인이 50만 표 차이로 이길 거 같아.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언론이 체계적으로 탄압을 당하고 망가진 걸 눈으로 목격한 현업 종사자의 간절한 바람이었겠지. 난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예상만 해보자면 전 박근혜가 100만 표 차이로 이길 거 같아요. 불행히도 그의 예상은 틀렸고 나의 예상이 적중해버렸다. MBC는 보도기능을 거의 다 잃어버리다시피 했고, MBC와 YTN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은 계속 추운 광야를 떠돌아야 했다.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은 그 광야에 대한 이야기다. 본인 역시 EBS 반민특위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아무 이유 없이 상부의 제작 중단 명령을 받고 좌절감에 회사를 떠난 바 있는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전국언론노조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생각하는 광야의 자초지종을 다루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과 이사장들이 MBC와 YTN, KBS에 내려왔고, 그중 YTN과 MBC는 제5공화국 언론강제통폐합 이후 최대 규모인 20여명의 언론인을 해고했다. 해직된 기자들은 해고무효소송 투쟁을 해야 했고, 해직되진 않았으나 징계받은 MBC의 수많은 언론인들은 자신의 전문영역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유배를 가야 했다. 정권의 입에 맞는 보도만을 하도록 순치된 언론은 자생력을 잃었고, 결국 국가적인 위기가 와도 언론답게 대처하지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던 그 시간, 목포 MBC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가 오보라며 아직 수많은 학생들이 갇혀 있단 뉴스를 서울 본사에 보고했지만, 순치될 대로 순치된 MBC는 그 보고를 묵살했다. 극장 스크린 가득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앞에서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참담한 침묵밖에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지키고 선 언론인과 시민이 연대할 때만 참이다.
메릴 스트립은 골든글로브 평생 공로상인 세실 B. 드밀 어워드를 수상하는 자리에서 언론인들이 진실을 이야기하려면 그들을 뒷받침해줄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이라며 영화인들에게 기금 마련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스포트라이트>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 계속 그 용기를 발휘하려면, MBC와 YTN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정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들어 보도하려면, 그들을 지지하고 뒷받침해 줄 안전장치가 필요하리라. 그리고 그 안전장치를 만들고 유지하는 노력은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가와는 별개로 항시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그 싸움은 거물급 정치인 그 누구가 나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당신과 나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포기하지 않을 때만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