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을 둘러싼 다양한 사유를 담은 <면역에 관하여>
‘메르스’ 사태 이후로 의식적으로 손을 꼼꼼하게 씻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고, 전문가들의 고견이 무참하게 빗나가고, 평범한 일상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좀먹었던 그때의 기억이, 고작 손을 씻는 것만이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습관처럼 몸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인간이란 무력하고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두려움과 허무함이 맞닿아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면역에 관하여>를 쓴 저자 율리 비스에게도 우리가 유한한 목숨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이러한 감정은 중요한 듯하다. 여기,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아닐까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아들이 태어나자, 나는 내가 지닌 힘과 내가 지닌 무력함을 둘 다 예전보다 더 과장해서 느끼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운명과 흥정하는 짓을 어찌나 자주 했던지, 남편과 아예 놀이처럼 만일 우리 아이가 어떤 병에 걸리지 않는 대가로 다른 병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무슨 병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을 서로 던지곤 했다. 그것은 부모된 자들이 내려야만 하는 무수한 불가능한 결정들에 대한 패러디였다.”
이 책은 과학 실용서보다는 철학 에세이에 가깝다. 면역력의 중요성이나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우리가 먹는 음식, 마시는 공기, 생활하는 공간 안에 스며들어 있는 인간의 질병과 고통의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첫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 자신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경험뿐만 아니라 아킬레우스 신화, 볼테르의 <캉디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등의 명저를 두루 살펴보면서 ‘면역’을 둘러싼 다양한 사유를 전개해 나간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율라 비스는 1979년생의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로 <빌리버>, <하퍼스>, <뉴욕 타임즈 북 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해왔으며 현재 <에세이 프레스>의 창간인 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하고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의 세계의 여러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201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화제작이기도 하다.
<면역에 관하여>
지은이 욜라 비스
옮긴이 김명남
출간정보 열린책들/ 2016-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