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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 앞에서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사실 난 참 잘 우는 사람이다. 영화를 감상할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무언가 나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으면 어김없이 운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혹은 주인공이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서 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미술관, 혹은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지난번 내가 ‘굿 다이노(Good Dinosaur, 2015)’라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눈물을 흘렸을 때 옆에 있던 사람이 쳐다보던 썩 좋지 않았던 눈빛을 나도 그에게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림과 눈물>은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그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과연 그들이 무엇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그 원인을 추적하는 한편 역사를 되짚어 눈물이 마르게 된 다양한 계기를 찾아낸다. 저자는 그림 앞에서 운 사람들의 편지 400통을 분석하며 미술작품과 관련한 눈물의 역사를 더듬는다. 그리고 미술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의 사례를 모아 그들이 울었던 이유를 유형화한다. 그는 작품 앞에서 우는 이유를 ‘시간’, ‘종교’, ‘부재’ 이렇게 세 가지로 압축한다.

그림 속의 짧은 순간, 그렇지만 그것이 그림 속에 갇힘으로써 영원히 박제되어버린 시간. 그에 비해 인간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가버려 허망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관람객이 깨닫는 순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오페라와 연극과 소설, 시, 영화, 오케스트라 음악과 달리 그림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시간 속의 한순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은 한평생보다 더 길게 지속되고 그러는 동안 희석되고 고정된다. 그림 앞에서 흘리는 눈물에 독특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렇게 특이한 ‘시간의 왜곡’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서양미술의 상당수가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림을 보는 순간 개인감정이 이입되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운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술관이 아닌 교회에서 그림을 마주쳤을 때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는 많은 그림에서 사람들이 고통스런 부재를 느낀다고 말한다. 신이 부재든, 은총의 부재든, 존재감 자체의 부재든 이런 고통스런 부재는 사람들을 울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런 존재감의 부정이며 정반대다. 부재와 존재감은 갈피를 잃은 시간 감각과 함께 20세기와 그 이전을 통틀어 울음 사례들의 최소한 절반은 해명해 준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로스코 예배당 내 그림, 동성애 코드를 짙게 풍기고 있는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젊은 바쿠스’, 자신이 어릴 적 큰 감명을 받았다는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성 프란체스코의 무아경’, 디리크 바우츠(Dieric Bouts)의 ‘울고 있는 마돈나’,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바다처럼 펼쳐진 구름을 감상하는 여행객’등의 그림들을 들며 눈물을 설명한다.

위의 언급된 사실 때문에 울게 될 수도 있지만 사실 회화는 르네상스를 지나오면서 예술의 지위로 격상되었고, 보고 느끼고 감동받는 대상보다는 분석하고 탐구해야 하는 지적인 대상이 되었다. 그림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감상의 대상에서 추방된 것이다. 지적인 영역에서는 눈물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들이 그림 앞에서 울지 못하는 이유, 즉 그림에서 진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지식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림을 바라볼 때 역사와 학술적으로 정리된 차가운 단어들(사전 지식들)은 그림을 바라볼 때 깊이 빠져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개개인이 느낄 수 있는 예술의 무아경, 열정, 혹은 강렬한 감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물은 오롯이 그림에서 보이는 분위기와 다가오는 느낌과 그 앞에 서 있는 나 사이에 걸림돌이 없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림 앞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들에 취해 모든 경계를 풀고 무방비의 상태가 되어버리는 그 경험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한 번 쯤은 꼭 해보고 싶다면 저자가 마지막에 남긴 작품들과 강렬한 만남을 나눌 수 있는 비결, 작품 앞에서 행복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8가지 방법을 한번 실천해보면 어떨까 싶다.

첫째 미술관에 혼자 가라.
둘째 모든 것을 보려고 노력하지 마라.
셋째 집중력 분산을 최소화하라.
넷째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라.
다섯째 완전한 주의를 기울여라.
여섯째 스스로 생각하라.
일곱째 진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라.
여덟째 충실하라.

<그림과 눈물 –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
지은이 제임스 엘킨스 James Elkins
옮긴이 정지인
출간 정보 아트북스 / 2007-12
그림이 우리를 어떻게 강렬하고 예기치 못하게, 심지어 눈물을 흘릴 지경으로 동요시키는지에 관해 다룬 책이다. 미술사학자 제임스 엘킨스가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사연을 수집해 그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고, ‘눈물이 말라 버린’ 우리 시대의 그림에 대한 인식과 감상 태도를 점검했다.
책은 ‘왜 우리는 그림 앞에서 울지 않는가?’, 그리고 ‘운다면 그것은 왜 잘못된 일처럼 보이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우는 일은 쉽게 받아들여지지만, 그림 앞에서 우는 것은 뭔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태도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아해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림을 보며 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경험담을 적어 보내달라는 신문광고를 내고, 지인들과 미술사학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하여 받은 답장들을 정리해, 그림 앞에서 울게 되는 현상들을 유형별로 정리, 분석하고, ‘그림 앞에서의 울음’이라는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받아들여졌는지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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