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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의 사람들은 모두 필사적이다. ‘필사적으로 짝을 찾는 사람들’과 ‘필사적으로 혼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대치한다. 전혀 다른 두 부류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필사적인 이유만은 다르지 않다. 살기 위해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사랑에 집착하고, 자신을 지켜내고 싶어 연애를 회피할 뿐. 그러니 그들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은, 언제나 결국 자기 자신이다. 짝을 찾는 사람도 혼자가 되려는 사람도, 그래서 이토록 필사적인 것이다. 자기만은 살아남겠다고 정말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데이빗(콜린 패럴)이 돋보이는 까닭은 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려고 기꺼이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감수한다.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는 세상에서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려 애쓴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지켜내는 모습. 그래서 필사적으로 헌신하는 모습. 그 필사의 시간 속에서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

<더 랍스터>를 보며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데이빗처럼 필사적인 사람이 이 영화에도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려고 기꺼이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감수한’ 남자가 서기 2027년 런던에도 살고 있었다.
가까운 미래. 인류가 더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시대. 지난 18년 4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단 한 명의 아이도 새로 태어나지 않았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지자 앞날에 대한 희망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테오(클라이브 오웬) 역시 미소를 지운 자리에 냉소만 채우며 살고 있다. 그날도 변함없이 인상을 구긴 채 걷던 그가 괴한들에게 납치되며 영화는 시작된다.

movie_image테오를 데려간 이들은 불법 이민자를 보호하는 비밀단체 피쉬단의 조직원들. 그들의 리더 줄리언(줄리안 무어)을 테오가 모를 리 없다. 한때 그와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테오를 찾아온 줄리언이 간곡히 부탁한다. 불법 이민자여서 위험에 처한 어느 흑인 소녀를 안전하게 항구까지 데려가 달라는 것이다. 줄리언에 대한 약간의 미련과 흑인 소녀에 대한 약간의 연민이 테오를 움직인다. 그렇게 소녀의 동행이 된다.

얼마 뒤에야 알게 된다. 이 소녀가 위험에 처한 진짜 이유를. 단지 불법 이민자라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차지하려는 세력이 아이를 엄마와 떼어 놓으려는 시도에 맞서, 이제 테오가 싸운다.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끝까지 소녀의 편에 선다.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는 세상에서 혼자만 그렇게 살아가려 애쓴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지켜내는 모습. 그래서 필사적으로 헌신하는 모습. 그 필사의 시간 속에서 테오가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그래비티>를 만들기 전 <칠드런 오브 맨>을 먼저 만들었다. 평론가 故 로저 에버트가 이 영화에 별 넷, 만점을 주었다. “뭐라고 쉽게 정리해서 얘기하기엔, 마음속에서 너무나 큰 소용돌이를 치게 한다”고 감격하면서.〈LA 타임스>의 유명한 평론가 케네스 튜란도 감히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에 견줄 영화라며 극찬했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두렵고 희망 없는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강력한 이미지로 보여준다”고 흥분하면서.

그런데도 한국에서 개봉도 못한 이 영화를 <더 랍스터>와 함께 보길 권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무척 비슷한 이야기라고 느낄 것이다. 밀려오는 파도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존재들이 오직 서로에게 의지한 채 희뿌연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칠드런 오브 맨>의 먹먹한 라스트 신 위로, 아마도 <더 랍스터>의 애틋한 마지막 장면이 겹쳐 보일 것이다. 고정희 시인이 쓴 이 싯귀를 어쩌면 나처럼 오랫동안 되뇌이게 될 지도 모른다.

영원한 눈물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 詩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중

캄캄한 밤, 이미 혼자인 사람을 계속 혼자인 채로 버려두지 않아야 인간이므로. 상한 영혼들끼리 굳게 마주 잡은 손이 바로 사랑이므로. 그래서 데이빗에겐 랍스터의 집게발 대신 인간의 두 손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테오는 흑인 소녀가 내민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러니까,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이 두 편의 영화를 이렇게 필사적으로 당신에게 추천하고 있다.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 (2006)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클라이브 오웬, 줄리앤 무어
시놉시스
서기 2027년. 세계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재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자멸의 길을 걷는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소년이 18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인류는 모든 희망을 잃는다. 폭력과 무정부주의에 휩싸인 런던은 광신적인 폭력주의자들이 장악한다. 이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한 흑인 소녀가 임신을 한 것. 사회운동가 출신이지만 현재는 관료주의자로 변신한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그 임산한 소녀를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가담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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