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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은 못 나고 겁나도 괜찮다는 희망
이 달의 영화가 <스위스 아미 맨>(2016)으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영화랑 닮은 꼴인 영화를 어디 가서 찾아요!”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이해하리라. 꿈도 희망도 없어서 세상을 등지려…
햇살 찬란한 산티아고 거리에서 마이애미의 달빛을 떠올리다
연인 오를란도(프란시스코 리예스)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 마리나(다니엘라 베가)는 오를란도의 아들인 브루노(니콜라스 자베드라)와 그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한다. 백주대낮의 산티아고 거리를 걷던 마리나는 브루노 일당에게 납치되듯 끌려가 그들의 SUV에 태워진 뒤, 얼굴에…
‘피해자 다운 피해자’ 같은 건 없다
“안젤라 일에 관해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당신 편이예요. 하지만 광고판에 관해서는 아무도 당신 편이 아니예요.”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를 비난하는 광고판을 내릴 것을 설득하러 온 몽고메리 신부(닉 시어시)의 말에서…
끊어질 듯 가는 필라멘트가 새하얗게 세상을 빛내는 광경
델 토로의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보았고, 호킨스의 영화라 중얼거리며 나왔다. 물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은 괴수에 대한 사랑으로 필모그래피를 꽉꽉 눌러 채웠던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인장이 가득 찍힌 영화다.…
생은 언제나 제 나름대로 지리하고 제 나름대로 찬란하다
처음 죽음이라는 개념에 겁에 질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죽음이 무엇인지 감을 못 잡고 헤매던 나는, 모두가 삼베로 만든 수의를 입고 지팡이를 짚으며 서럽게 우는 모습…
이 땅에선 이뤄질 것 같지 않아 아픈 꿈
이제는 세상에 없는 나의 작은누나는 뼈가 쉽게 부러지는 희소병인 선천성 골형성부전증을 앓았다. 일곱 살 무렵까지는 자력으로 걸을 수 있었다는데, 누나와 여섯 살 터울인 나는 누나가 휠체어를 탄 모습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혼자서는 열차에서 내릴 수 없다.
* 영화 <배드 지니어스>(2017)와 <이중배상>(1944)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타우트 푼프리야 감독의 <배드 지니어스>는 장르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걸 망설이게 만드는 영화다. 고등학생 여러 명이 모여 완벽한 컨닝 계획을 세운다는 점에서는 호쾌한 하이틴 케이퍼…
화가의 시선을 따라, 일획이 만획인 세상 속으로
세상엔 하고 픈 이야기가 있어 만든 영화가 있고,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있어 만든 영화가 있다. <러빙 빈센트>(2017)는 단연 후자다. 서사만 놓고 본다면 <러빙 빈센트>는 평평한 영화다. 미처 부치지 못한 빈센트…
유년의 끝, 괴물의 밤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죄다 이상해.” 코너(루이스 맥두걸)는 몬스터(리암 니슨)가 원망스럽다. 빨리 엄마(펠리시티 존스)를 낫게 해 줄 방도나 말해주면 좋을 텐데, 몬스터는 계속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만 들려준다. 몬스터의 이야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