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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흩어져버릴 이야기를 붙잡아 육신을 입히는 사람들
* <작은 아씨들>과 <로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루이자 메이 올콧의 원작 <작은 아씨들>에서 조가 자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 계기는 엄마 마치 여사의 설득이었다. 깊은 슬픔에 잠겨 아무 것도…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발견하는 욕망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가 브르타뉴 섬으로 들어가는 도입부, 뱃사공들은 마리안느가 가져온 캔버스와 화구들이 물에 빠지는 걸 보고도 무심히 노를 젓는다. 마리안느가 화급히 물 속으로 뛰어들어 화구를 건져내는 동안, 뱃사공들은 물끄러미 바라볼 뿐…
좋든 싫든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두 사람의 왈츠
모든 이혼한 부부가 그런 건 아니겠으나, 어떤 이혼한 부부들은 다소 기괴한 적대적 동지관계에 평생 얽혀 살게 된다. 이혼이 성립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모두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두 사람이 함께…
말하지 못하고 허공에 걸어둔 마음들
<윤희에게>를 보고 돌아오던 날, 나는 오래 걸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 비로소 만난 윤희(김희애)와 쥰(나카무라 유코)이 그랬던 것처럼. 20년 넘는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던 두 사람은, 감격에 찬 포옹이나 마음을 확인하는…
폭력의 무한나선에서 나와, 가짜 이항대립을 거절하자
* 영화 <조커>의 스포일러가 많은 글입니다. <조커>에 대해 이야기하려 들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영화에서 보여진 일련의 사건들 중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아서 플렉(와킨 피닉스)의 망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아이들은 무사히 어른이 되었을까
조나 힐의 연출 데뷔작 <미드90>(2018)의 주인공은 ‘땡볕’ 스티비(서니 설직)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건 ‘존나네’(올란 프레나트)였다. 스티비의 인생에서 ‘존나네’의 위치는 기껏해야 조연일 것이다. 무리 내 위치는 스케이트보드 실력으로…
기어코 행복해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
* 모처럼 예고편에서 보여준 것 이상의 큰 스포일러는 없는 글입니다.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하나(김나연)는 마음이 복잡하다. 각자의 일로 바쁜 엄마와 아빠는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는 부모의 불화를 애써…
편하게 얄미워 해도 되는, 대등한 상대
카투니스트로서의 존 캘러한을 그렇게까지 좋아해 본 적은 없다. 그가 구사하는 농담의 수위가 내 기준으론 언제나 지나치게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남들의 눈치를 보는 대신 자기 성격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우리는 (가난의) 과거를 잊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
* 영화 <기생충>(2019)의 결정적 스포일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문광(이정은)과 근세(박명훈)를 상대로 아귀다툼을 벌인 다음 날, 다시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모인 기정(박소담)과 충숙(장혜진)은 지하실에 봉인된 이들과 대화를 나눠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영화가 직접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죄의식 속으로
※ <서스페리아>(1977)와 <경성학교>(2015), 그리고 <서스페리아>(201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2018)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1977년판 원작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한다. 수지(다코타 존슨)는 어떤 사람이고 왜 춤을 추고 싶어하는지, 마르코스 무용학원 내부의 미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