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tag
차현지
소리 없이 말없이, 그러나 후회 없이
침묵에 가깝도록 음악이 배제된 영화를 마주하게 되면 무척이나 설렌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며 서사 안으로 즉시 빠져들도록 유도하는 적재적소의 사운드트랙에 매료될 때도 있지만, 장치 하나 없이 현실과 비견한 장면을 묵묵하게 그려내는…
착하지 않기로 한 캐릭터를 대하는 방법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의 쾌감이 있다. 그가 처한 상황을 참작해 보거나 특정한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은 인물의 돌발적인 반응이리라 곡진하게 해석하려는 노력으로도 끝내 납득하기는 어렵고 버거운 캐릭터들. 애당초 쉽게…
거대한 페이스트리처럼 넉넉한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 때 선명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몇 있다. 이를테면 유년 시절과의 영원한 작별을 마주하게 되는 때. 그런 시퀀스가 갑작스레 펼쳐질 땐 유독 강렬한 감정들이 동시에 찾아든다. 수치심과 죄의식 같은,…
불가해한 모든 것들로부터
지난해 봄, 내게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던 고양이 밍가를 떠나보냈다. 밍가와 나는 십 년을 함께 살았다. 밍가는 습관적으로 구토를 자주 한다는 것 빼고는 딱히 지병이랄 게 없는 고양이었다. 죽기 몇 달…
죽음을 마주하는 법
극 중 엠마뉘엘과 파스칼, 두 자매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앙드레를 간병하는 데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내어놓는다. 중년의 소설가인 엠마뉘엘은 한창 원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동생인 파스칼과 번갈아 가며 하루에 꼭…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극중 예순 살 생일을 맞은 나이애드는 돌연 실패했던 도전을 다시 감행하려 한다. 쿠바와 플로리다 사이의 거친 바다를 종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선수로서 가장 정점이었던 젊은 시절에도 중도 포기를 했을 만큼 엄청난 체력과…
직감이 닿는 곳에는 진심이 있다
극 중 찰리 케일은 탐정도 형사도 아니다. 다만 거짓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상대가 말을 함과 동시에-그것이 거짓이라면-찰리는 본능적으로 ‘개소리!(Bullshi*!)’라고 직감한다.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일 수 있는 그 슈퍼 파워로 인해,…
내향인의 세계 일주
어릴 땐 왜 그렇게 탐험가들의 전기를 많이 읽었을까. 학령기 아이들이 밀집한 주거 단지마다 세계 동화 명작이나 과학 전집을 방문 판매하던 책 트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위인들 중에는 신대륙을 발견한…
오래된 사람들의 아주 오랜 응원
웨일스 북부의 렉섬이라는 소도시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제 축구 경기장이 있다. 1864년에 창설된 축구팀 클럽 렉섬의 주 경기장이자, 몇 해 전까지 렉섬 시민들에 의해 자치적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사람보다 양이 세…
완전하고 온전한 나만의 쇼
티나 페이가 한 시대의 걸출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쇼의 헤드라이너로서도 손색이 없는 코미디언이자 멋진 퍼포머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SNL>도, <퀸카로 살아남는 법>도 아닌(한국어 제목이 긴 편이니 원제인 <Mean Girls>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