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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팅 (11 AM)
질펀히 흐를 용(溶)자를 쓰는 용수를 태운 비행기가 막 활주로에 들어섰다. 몇 시간 전보다 빨라진 시각과 낮아진 기온을 안내하는 기장의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승객들은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 위…
세컨드 오피니언 (10 AM)
하루에 커피를 다섯 잔씩 들이킬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와서는 전생처럼 느껴진다.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교해지는 건 좋지만, 카페인 내성만큼은…
2번 출구 스타벅스 (9 AM)
-오전 9시라는 시간이 아직 존재하는 곳이 있대. m의 말이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벌떡 일어나 되물었다. -그게 사실이야? 나의 과한 리액션에도 m은 읽던 책을 놓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사실이야.…
Jet Lag 8 (8 AM)
LAX – ORD 8:03 AM UNITED 1598 나는 아이폰의 메모장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2시 37분. 구글맵을 켜고 금요일 오전 6시 출발 웨스트 헐리우드에서 LAX 공항까지 자동차로 이동 예측시간을 확인했다.…
분실물 찾기의 대가 4 – 잃어버린 것은 그저 잃어버린 것으로 (7 AM)
커다란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 때문에 그는 잠에서 깬다. 그도 알고 있다. 커다란 개도 참을만큼 참았다는 걸. 커다란 개는 지난 이틀 동안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래선 안되었다. 그런 식으로 취급해서는…
그 새벽의 온기 (5 AM)
가까스로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기 전, 그녀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뉴욕과 보스턴, 워싱턴과 필라델피아 같은 이름을 지닌 도시들의 경계를 넘나들며 날아다녔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근사한 꿈은 아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위 표시가 없는 지도를 따라 (4 AM)
깨어난다면, 나는 네 생각을 할 거야. 깨어나지 않는다면,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 생각을 하고 싶어질 거야. 하고, 싶어질 거야. 그게 뭐가 되었든, 뭐든, 너와 하고 싶어질 테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우리에게 (3 AM)
그즈음 나는 무언가를 기억해내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삼십 칠년 여 만에 한국에 온 미국인 여성에게 옛 극장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첫날, 그는 종로 3가 유니클로 앞에 서 있었다. 주위를…
무례한 그 연애의 결론 (2 AM)
토요일 오전 진료를 마친 나는 정이 퇴근하길 기다렸다. 같은 병원 동료인 그녀는 4살 어렸지만 비단 내가 아니라 곁에 있는 모두가 사라져도 혼자 지낼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정의 그런 면이 서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