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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슬픔을 켜둔 채로
며칠 전, 내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난감해진 얼굴을 애써 숨기면서 급히 대답을 골랐다. “포장지 뜯을 때 말이에요, 이빨을 안 쓰고 손으로 한 번에 뜯는 사람이…
노래의 기쁨과 슬픔
그런 노래들이 있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나를 ‘오래전 그곳’으로 훌쩍 데려가는 마법과도 같은 노래들. 하림의 <출국>은 10년 전 첫 직장을 관두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을 눈앞에 펼쳐놓고,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당신이 나의 중력이에요
몇 해 전 어느 날의 일이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편지 한 통이 와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땐 열일곱이었고 편지 쓴 그해 스물이었던 여자아이, 그러니 지금은 스물넷이 된 여자아이 석희로부터.…
선명하지만 닿지 않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처음의 순간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덕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서라면 첫인상, 첫 키스, “사랑한다”고 처음 말했던 순간 등등… 몇 년이 흘러도 생생하다. 라디오 피디가 되었노라 통지받던 합격의…
어떤 아름다움은 해석되기를 거부한다
두 개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는 매끈하다. 흠잡을 데 없다. 커피를 든 원빈의 표정, 뮤직비디오 속 태민의 실루엣, 인스타그램 좋아요를 수천개 받은 일러스트, [슬램덩크] 애장판의 엔딩 같은 것. 다른 하나는…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노 다웃(No Doubt)의 ‘Just A Girl’을ᅠ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소녀였다. 교복을 입어야 하고, 학교를 가야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일상에 큰 불만도, 의욕도 없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녀. 용돈으로 씨디를 사모으지만…
저녁 숲속에서 바다를 보았다
미지의 것에 관심이 많다. 알 수 없는 시공간의 우주. 선명한 태양 아래서는 사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 몇만 광년 너머 별빛이 반짝이면 신비에 사로잡힌다. 거대한 우주적 공상에 빠지다 보면 티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