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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미
관계의 풍경, 하나뿐이지도 유일하지도 않은
붕괴 이후의 붕괴 올해의 단어 하나를 선정해야 한다면, ‘붕괴’가 아닐까. 사전적 의미로는 ‘무너지고 깨어짐’. 그리고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해준의 대사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심해를 닮은 깊은 사랑에 빠졌음을 시인하는…
당신다운 당신, 우리다운 우리
“(…)고통, 그것은 밤새도록 잠을 파헤치는 쟁기질입니다. 그리고 낮 또한 파헤칩니다. 견딜 수 없이 힘듭니다” – 프란츠 카프카 * * 프란츠 카프카, 배수아 역, 『꿈』, 워크룸, 31p. 상실을 단절하기 남자는 퍼석한…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세계 시민의 이면 줄곧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세계 시민인가요?” 근사한 벽난로가 있는 글로벌한(실제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여럿이 살고 있다) 셰어 하우스의 집주인이 물었다. 이 공간에는 ‘세계 시민’만이…
일단 웃고 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정치 1번지의 정치 종로구민으로 사는 일은 정치라는 교차로를 오가며 이리저리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애드벌룬을 발견한다. 커다랗고 동그란 물체가 시내 한복판에 둥실 떠 있는 것만으로도 꽤…
재밌으니까 뛰는 거야
그냥 하면 된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축구를 했다. 다니던 태권도장 청소년들과 탱탱볼로 치른 약식 경기였던 데다가 실력이 부족한 탓에 공 한번 제대로 몰아보지 못했지만, 우르르 공을 따라 소리치며 달렸던 이…
버티는 맛, 잊는 맛
길 위에 뿌리를 내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길 위의 셰프들>은 지역의 스트리트 푸드를 조명하는 미식 다큐멘터리이지만 음식 자체보다도 각 지역의 문화사와 길 위에서 진득하게 버텨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를 꾸린 사람들의…
친애하는 홍콩영화로부터
천년의 이상형, 내 사랑 금성무 막무가내인 청년이 있다. 90년대 영화 속에서 그는 아주 많은 순간 순수하게 미쳐있다. 이 남자는 연인에게 차인 후에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고 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