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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지
우리는 서로를 느꼈다!
한겨울 깊은 밤,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 안에는 여자들만이 가득했다. 흡사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지상을 향해 줄지어 계단을 오르던 여자들. 길게 뻗은 언덕길을 숨죽여 걷던 여자들. 경찰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캘버트는 평생을 살았던 워싱턴 D.C를 떠나 연고가 없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실버타운으로 이주했다. ‘시니어 클라우드 솔루션 아키텍트’라는, 캘버트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직책을 가진 아들과 최대한 가까이 있기 위해서였다. 캘버트는 아들이…
소리 없이 말없이, 그러나 후회 없이
침묵에 가깝도록 음악이 배제된 영화를 마주하게 되면 무척이나 설렌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며 서사 안으로 즉시 빠져들도록 유도하는 적재적소의 사운드트랙에 매료될 때도 있지만, 장치 하나 없이 현실과 비견한 장면을 묵묵하게 그려내는…
착하지 않기로 한 캐릭터를 대하는 방법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의 쾌감이 있다. 그가 처한 상황을 참작해 보거나 특정한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은 인물의 돌발적인 반응이리라 곡진하게 해석하려는 노력으로도 끝내 납득하기는 어렵고 버거운 캐릭터들. 애당초 쉽게…
거대한 페이스트리처럼 넉넉한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 때 선명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몇 있다. 이를테면 유년 시절과의 영원한 작별을 마주하게 되는 때. 그런 시퀀스가 갑작스레 펼쳐질 땐 유독 강렬한 감정들이 동시에 찾아든다. 수치심과 죄의식 같은,…
불가해한 모든 것들로부터
지난해 봄, 내게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던 고양이 밍가를 떠나보냈다. 밍가와 나는 십 년을 함께 살았다. 밍가는 습관적으로 구토를 자주 한다는 것 빼고는 딱히 지병이랄 게 없는 고양이었다. 죽기 몇 달…
죽음을 마주하는 법
극 중 엠마뉘엘과 파스칼, 두 자매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앙드레를 간병하는 데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내어놓는다. 중년의 소설가인 엠마뉘엘은 한창 원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동생인 파스칼과 번갈아 가며 하루에 꼭…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극중 예순 살 생일을 맞은 나이애드는 돌연 실패했던 도전을 다시 감행하려 한다. 쿠바와 플로리다 사이의 거친 바다를 종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선수로서 가장 정점이었던 젊은 시절에도 중도 포기를 했을 만큼 엄청난 체력과…
직감이 닿는 곳에는 진심이 있다
극 중 찰리 케일은 탐정도 형사도 아니다. 다만 거짓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상대가 말을 함과 동시에-그것이 거짓이라면-찰리는 본능적으로 ‘개소리!(Bullshi*!)’라고 직감한다.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일 수 있는 그 슈퍼 파워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