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우리 약속한 자리
많은 시간 흘렀지만 난 기억해요
바로 오늘 만나기로 했죠

이 자리에서 우린 헤어졌었죠
다가올 그리움에 불안해하며 우린
서롤 걱정하며 이별했죠
그리곤 약속했죠
이맘때쯤이면 편한 추억으로 남을 거라 하며
부담 없이 오늘 만나기로

그대 늦는군요
그래요 이젠 외출 준비가 길어질 나이죠
내겐 그대 수수했던 모습뿐인데
오늘도 전처럼 창가에 있죠
길게 늘어진 차들이 보이네요
천천히 와요
그리 지루하지 않아요

혹시 잊었나요 오늘 이 자리
그렇게 요즘 행복한가요
그 생각에 조금 서러워지네요
자 이제 그만 난 일어날게요
그대 처음으로 약속 어겼네요
그런데 왜 내가 더 미안한 걸까요

2025 [월간 윤종신] Repair 6월호 ‘오늘’은 옛 연인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감정 변화를 담은 곡이다. 희망에서 애틋함으로, 애틋함에서 실망과 서운함으로. 오래된 약속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남자의 마음속에는 각기 다른 얼굴을 한 감정이 요동친다. 괜찮은 척하면 할수록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은 간절해지고 나중에는 도리어 자신이 미안함을 느낀다. 오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대화체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독백이 어우러져, 점점 복잡하고 모순적으로 변해가는 감정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원곡은 5집 앨범 [우愚]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번 리페어 버전은 강화성이 편곡으로 참여했다. 지난 5월호를 통해 선보였던 ‘일년’과 연작을 이루는 곡이기도 하다.

“이번 리페어 준비하면서 가사를 다시 살펴보는데, 스물일곱 살의 내가 그래도 곧잘 했다 싶더라고요. 청승 맞지만 그렇기에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인지 앞으로도 이 곡처럼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써보고 싶어졌어요. 저 같은 장년층의 사랑과 이별, 삶을 다룬 동화, 충분히 무르익고 현실에 치일 대로 치여본 사람들을 위한 동화랄까요. 그런 동화 같은 노래들로 채워진 앨범이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너무 현실적인 얘기는 왠지 고달프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이제는 소소한 동화 같은 얘기가 다시 끌리네요. 현실에 있는 법하면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얘기, 웬만큼 살아본 사람들에게도 위안이 되고 낭만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얘기, 그런 얘기를 기획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화자는 윤종신의 이별 가사 속 남자들의 전형을 정수처럼 보여준다. 이별 후 수년이 지났음에도 오래된 약속을 기억하고, 가슴 떨리는 재회를 꿈꾸며, 결국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린다. 순진하고 청승맞은 태도.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켜 보려는 미련한 시도.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은 다분해도 실제로 이런 기다림을 실현하기에는 어렵기에, 이토록 지극한 마음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기에, 우리는 여전히 이와 같은 이별 동화에 끌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윤종신은 가사 속 화자의 태도와 더불어 우리 말이 자아내는 특유의 멋을, 이 노래의 매력으로 꼽는다.

“요즘 들어 우리 말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저는 외국어를 잘 못해서 다른 나라 언어와의 비교는 어렵지만, 우리 말에 대체 불가능한 멋이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거든요. 특히 우리 말 특유의 발음, 어순, 어감은 독보적인 거 같아요. 이번 가사를 다시 보면서도 미사여구가 거의 없는데도 많은 얘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건 우리 말이어서 가능한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우리 말에 음을 얹혀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이 일을 3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말처럼 창작하기 좋은 언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 말이 음악 언어로 활용되는 방식이 저는 참 신기하고 좋네요.”

[6월호 이야기] “그때라서 쓸 수 있었던 윤종신의 찌질동화 #2.”
[Music]

Lyrics by 윤종신
Composed by 윤종신, 유희열
Arranged by 강화성

Piano by 강화성
Keyboards by 강화성 신정은
Programming by 신정은

Recorded by 윤종신
Mixed by 김일호 (@지음스튜디오)
Mastered by 권남우(@821 Sound)

[MV]

프로덕션 구달스필름
연출 장소하
촬영 장소하 조영래 이왕석 최송희 김형민
편집 장소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