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2023)

캐럴은 예고된 종말을 반년 남짓 앞둔 시점에 살고 있다. 케플러라는 행성이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알던 날짜의 개념도, 사회적 규약도 점점 희미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때로는 아예 옷도 입지 않는다. 매달 성실하게 납부하던 대출 이자도 더는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행복하게 즐길 수 있을지를 골몰한다. 늘 우선순위에 밀려 뒤로 미룬 것들, 평상시의 나라면 감히 도전하지 않았던 것들에 집착하고 파고든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티베트 여행을 가고, 모노가미가 아닌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서핑을 하거나 소설을 쓴다. 질서가 사라진 도시에는 극도의 해방감으로 흥분한 사람들이 나체로 거리를 활보한다. 쇼케이스가 부서진 채 조명이 꺼진 상점들, 뒤죽박죽 정차된 자동차에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라는 문구가 태깅돼 있다. 캐럴의 자동차도 누군가에 의해 태깅을 당했다. 캐럴의 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문구를 보며 일제히 환호한다. 캐럴은 혼란스럽다. 무엇을 즐겨야 한단 말인가? 또는 무엇을 즐거워해야 한단 말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캐럴은 이 상황을 전혀 즐기지 못한다.

캐럴의 회사는 종말이라는 축제로부터 달아나고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일종의 은신처다. 밤과 낮의 길이가 18시간씩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와중에도, 스테이플러로 종이 서류를 모아 찍는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숨어 있는 곳. 회계 부서의 업무 보조인 캐럴은 그러한 사내 분위기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일상적이고 규칙적이며 정적인 캐럴의 성정은 업무를 수행하기에 적격이다. 회사의 인사 담당 관리자 캐슬린은 캐럴에 대해 칭찬인 양 이렇게 묘사한다. ‘어디에서도 튀지 않고 무던하게 동화됨.’ 캐럴에게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녀 특유의 매사 귀찮은 듯 나른한 말투는 짐짓 침착해 보이기도, 때로는 도통 속을 알 수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부모님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언니도 캐럴 앞에서는 조심스러워진다. 캐럴은 서핑에 도전한다고 둘러대며 가족들을 안심시키지만…… 종말을 모르던 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는 게 그렇게까지 걱정될 일일까. 그러나 이제 더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되고 저축할 필요도 없으니, 자아실현의 목적이 아닌 이상, 회사에 간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긴 하다. 심지어 캐럴은 회사가 무엇을 팔아 이익을 얻는지도 실은 잘 모르니까. 캐럴의 목적은 그저 출근해 일을 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뿐이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2023)

회사에는 캐럴 말고도 자신의 일상을 기꺼이 숨기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 일만 하느라 쉬어본 적이 없는 도나는 자녀들에게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종말을 앞둔 마지막 크리스마스 연휴, 도나는 가족들과 도란도란 옛 에피소드를 나누던 중에, 자식들의 어릴 적 추억마다 자신이 늘 부재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혼한 뒤 다섯 명의 자녀를 홀로 키워냈지만, 명절 때 직접 요리를 해 주지도, 자녀들의 발표회에 가지도 못할 만큼 바빴던 지난 과거가 회한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소설을 쓴다고―다시 말해 나도 이제 남은 생을 후회 없이 즐길 거라―어필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지인 걸까. 분명한 건 캐럴과 도나 두 사람 모두 새로운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늘 해오던 걸 계속하는 방식으로 인생의 남은 날들을 정돈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이들이 ‘Live Your Life!’를 외치며 생의 마지막 날들을 불태우듯, 캐럴의 회계 부서 직원들이 얼마 남지 않은 미래를 대하는 태도일 터. 죽음이 명확히 예측되는 미래이긴 하지만, 아주 먼 관점에서 보면 미래라는 시제는 늘 그렇게 쓰이기도 하니까.

인사 담당 관리자 캐슬린은 회사를 ‘기분 전환’을 하는 기계라고 표현한다. 앞당겨진 죽음을 모른 척 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땐 자꾸 감정을 뒤적이게 된다. 좋아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마찬가지.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면 할수록, 애써 억누르던 두려움과 슬픔도 엄습한다. 그러므로 회사만큼은 감정을 소거한 공간이어야 한다. 오로지 숫자로 점철된 회계 장부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결과값을 산출하는 시간만큼은 죽음의 공포도,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2023)

언제부턴가 캐슬린의 기분 전환 기계를 오염시키는 일들이 생겨난다. 직원들의 책상 위에 시시한 장식품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하나둘 모은 도자기 쥐 인형이나 어느 야구팀의 오랜 팬임을 인증하는 굿즈, 여행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나 레고로 만든 모형을 보게 되었을 때. 서로에게 사사로운 질문을 하고,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탕비실 귀퉁이에 서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종말 이전이라면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일 테지만, 외부로부터의 감정적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숨어든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캐럴은 동료들의 이름을 외우고 호명한다. 직원1, 직원2, 직원3이 아닌, 브루스, 케이시, 어맨다를 부른다. 죽은 동료의 장례식을 치르고 애도를 표한다. 종말 이전의 일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캐럴과 동료들은 두려움과 슬픔을 뚫고, 친밀해지는 걸 택한다. 그 친밀함이 이내 깊은 상실과 허무함을 동반한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우는 일이 빈번해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더라도, 그래도. 이제 곧 영원히 잃고 말 친구와 함께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며 감자튀김을 먹는 것. 그것이 캐럴이 원하는 지구에서의 마지막 하루이지 않을까. 캐럴 식의 카르페 디엠. 서핑을 하고 소설을 쓰고, 티베트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캐럴은 캐럴답게, 도나는 도나답게 종말을 맞는다면 그보다 더한 카르페 디엠이 있을까. 나는 그편이 더 용기 있다고 느낀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2023)
원제 Carol & the end of the world
OTT NETFLIX
크리에이터 댄 구터먼
출연 마사 켈리, 킴벌리 에이베어 그레고리 및 멜 고드리게스
시놉시스
종말의 날이 코앞에 닥친 지구. 끝을 앞둔 세상의 혼란이 벅차기만 한 여자가 지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나날들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